시사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

Chris Jeon 2024. 9. 3. 10:27

 

 

 

Communication 방법이 변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웬만하면 단톡방 서너 개 이상에 가입되어 있다. 단톡방 마다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공통적 금기 사항 한가지. 정치와 종교 이야기 하지 말기. 그 이유는 모두 알고 있다. 거론하면 싸움이 되기 쉬우니까.

 

그렇다면 정치 종교 관련 주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입 닫고 사는가?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인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곳, 특히 남성들이 이야기하는 곳 지나치며 들어보면 정치 이야기가 제일 많이 들린다. 한인 커뮤니티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곳이 종교 단체이니 종교 관련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생활과 밀접해 있고 큰 영향을 미치는 2가지 주제에 대해서 제대로 된 토론이 잘 안되고 그래서 짐짓 금기시 되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싸움과 경기를 구분 짓는 주요한 기준은 룰이다. 싸움에는 룰이 없고 경기에는 룰이 있다. 저자거리 싸움과 격투기 경기의 차이다.

 

이어서 말싸움과 토론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대표하는 석학들의 토론 장면을 보면 싸우지 않는다. 오로지 논리에 바탕 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나눌 뿐. 판단은 시청자들의 몫이다. 나랑 달라도 비난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발견된 상대의 모순이 있다면 물어서 확인 할 뿐 설사 내가 틀렸어도 자책하지 않는다. 나의 오류를 바로 잡아줘서 감사할 뿐이다. 제대로 된 토론의 룰이다.

 

보통 사람은 그런 석학들이 가진 전문적 지식이나 논리 전개 능력이 없으니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일리 있어 보인다. 하지만 생각의 표현이 반드시 논리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모든 이야기에 전문성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농부의 말에 정승이 깨닫고 할머니의 삶의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는다.

 

어떤 주제를 갖고 이야기 할 때 싸움이 아닌 토의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다름(difference)과 틀림(wrong)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즉 나와 다른 견해를 수용하고 그 다름을 통해서 배운다는 자세가 갖춰져야 한다.

 

둘째, 예의를 지켜야 한다. communication이니 일방적인 나의 주장 보다는 경청이 더 필요하고, 비속어 쓰지 말고, 흥분하거나 화내지 말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지 말고 곰곰이 생각해 보고 말한다. 이는 곧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이다.

 

세번째는, 토론이 가능한 환경인가를 살펴야 한다. 문자로만 의견을 주고 받는 카톡방, 상대의 의도를 총체적으로 느끼는 것이 제한되는 화상회의, 그냥 가벼운 주제를 갖고 이야기 하는 모임에서는 정치나 종교와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내가 어느정도 정해진 주제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올바른 정보를 갖고 있는지 여부와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는지도 솔직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에 내가 이런 수준이 아니다 싶으면 혼잣말 하거나 토의 장소에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 정상적인 토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뒤에서 숨어서 욕하면 더 나쁜 것이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이든 다수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의견이 개진되어야 바른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잘못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이다. 사랑(love)의 반대말은 무관심(indifference). 우리에게 이 순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정치,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과 적절한 상황에서 올바른 방법으로 활발하게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바람직하고 당연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 종교에 대한 토론을 무작정 금기시하기 보다는 먼저 제대로 된 토론 문화를 정립하기 위한 전사회적 자성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최재천 교수가 ‘숙론’이란 제목의 저서에서 던진 화두를 되새겨 본다.

 

토론은 “누가 옳은가 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찾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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