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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 1

이야기 들을 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자료를 찾아보기 전에 내 경험상 3분 이내일 것 같다. Speech 훈련할 때 긴 Speech라 할지라도 3분을 기준으로 연습한다. 그러나 대부분 3분을 넘긴다. 그래서 그들 사이에 통하는 격언이 있다. ‘Speech 잘하는 3S 방법; Stand up, Speak up, Shut up. 강론 듣는 시간에는 반쯤 졸고 있을 경우가 많다. 3분이 훨씬 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방법을 찾는다. 전체 내용 중 귀에 솔깃한 것 한가지만 가져가자. 비록 돈 내고 듣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 온 것 본전은 찾아야지. 내 시간도 돈이다. 오늘 말씀 중 ‘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귀에 쏙 들어온다. 죄는 특별한 경우에 짓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중에 짓게 된다는..

단상/일상 2023.03.27 (18)

아침 낙서

오늘 찬비 내리고 바람 분다고 한다. '나쁜 날씨'는 아니고, '그럴 수 있는 날씨'. 며칠 전 겨울 끝자락 잡으려는 여행 다녀왔다. 한참 돌아와서 보니 내 집. "참 좋더라." 우리 삶의 여정도 가다 쉬고 돌고 돌아 결국 종착지. '참 좋은 종착지' 일 것 같다. 어제 성당에서 장례미사 있었는데 47살 한참 때 부인이 돌아가셨다. 아이도 없이. 유족은 단출하게 남편, 시누이, 한국에서 급히 달려온 엄마, 여동생 달랑 4명인데 운구할 사람 필요하다고 해서 내 왼쪽 팔 빌려줬다. 관이 무겁더라. 떠나기 싫어서일까? 엄마가 화장터에 관 밀려 들어가는 것을 보고 오열하시는 모습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참 오랜만에 여러 사람 앞에서 울었다. 장지 예절 끝나고 인근 식당에서 점심 대접한다고 했는데 나랑 ..

단상/일상 2023.03.25

기념일 챙기기

냇가에서 서로 알몸 보며 물장구 치던 친구는 없고 모두 나이 들어 남의 나라에 와서 힘들게 살아온 터라 피차 외롭지만 서로 간에 쌓인 벽의 두께가 녹녹치 않다. 그래서 남은 것이 식구라 더욱 소중하다. 그러나 자식들도 크고 나면 내 품 밖이니 의도적이더라도 연결된 끈이 튼튼한 지 수시 확인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수의 날 챙기기를 실천한다. 생일도 음력, 양력 두번씩, 결혼 기념일, Mother’s Day, Father’s Day, 어린이날(둘 다 결혼 안 했으므로 어린이로 간주), 반려견 떠난 날, 그 녀석 생일, 발렌타인 데이… 생각해 보면 한달에 한번 이상 ~날이다. 형편에 거창하게 할 수는 없고 케익 하나 혹은 배달 음식 한 종류면 족하다. 술은 항상 쟁여 있으니 됐고. 대신 데코레이션은..

단상/일상 2023.03.20 (31)

낙서 32: 잘 몰라서…

# 개와 고양이가 만나면 싸운다. 왜? 서로 모양이 다르니까. '우리는 모두 같은 동물이다.' 라는 수준까지의 사고력이 안된다. 정치, 종교 주제 토의는 통상 갈등으로 끝난다. 왜? 생각이 다르니까. 정치나 종교나 ‘모두 같이 잘 살자는 것이 본질’ 이다는데 까지 사고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사실 잘 안돼서 통상 정치, 종교 주제는 거론하지 말자고 한다. 그저 정치, 종교 석학들이 터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이 부러울 따름이다. # 어느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 “나는 보수라서 박정희 좋아한다.” “그분 잘못한 것도 있을 텐데요.” “나는 보수이기 때문에 무조건 좋아한다. 우리의 경제를 살리신 분” “그래요?…”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 속으로 생각한다. 박정희 좋아하는 것과 보수가..

시사 2023.03.14 (30)

몸과 마음의 나이

약국가면 약이 즐비하다. Auto Shop에는 온갖 종류의 부속품과 약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사람이나 차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적으로 관리해주지 않으면 고장 난다. 그래도 대충 60세 이전에는 큰 고장 드물게 나는 것이 인간의 몸이니 고급 차 보다는 훨씬 잘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신체적인 나이와 마음의 나이가 엇박자 나서 문제가 생긴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제 개그로, ‘몸은 김정구 마음은 박남정’. 일리 있는 생각인 것 같다. 신체는 분명 노쇠해지고 있는데 마음은 한창 때를 향하고 있으니 간혹 무리하기도 하고 주책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그런데 실제로 마음의 나이가 신체의 나이보다 늦게 늙을까? 마음이란 것이 뇌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면 결국 뇌도 신체의 일부인데 마음이 몸보다 늦게 늙..

단상/일상 2023.03.10 (36)

오늘 일기

밤새 폭설이 내렸다. 이른 새벽 밖을 내다보니 뒤뜰 나무들이 눈 이불 덮고 아직 깊은 잠속이다. 바다 건너편 나라는 완연한 봄. 온갖 꽃망울들이 툭툭 터진다던데 좁은 것 같으면서도 넓은 지구. 눈 쌓인 담장위에 무엇인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움직임이 거의 없는 너구리 한 마리. 병든 놈이다. 지난해 봄에도 한 녀석이 우리집 뜰에서 생을 마감했지. 내 집이 그들에게는 명당인가 보다. 전염성 있는 병이라 시청 담당 부서에 전화하니 금방 담당자가 왔다. 전문가는 다르네. 서둘지 않고 “하이 친구” 하며 구슬리더니 답삭 올가미 걸고 틀에 넣고 나간다. 편히 보내주는 것이 맞지만 좀 미안하기도 하고 안스러워서 담겨 나가는 녀석 뒷모습 보고 성호 그어줬다. 눈 왔으니 이제 치워야지. 얼기전에 길 안 트면 나중에 엄..

단상/일상 2023.03.06 (30)

걸으며 느끼는 것

걸을 수 있는 것은 축복이라고 한다. 건강하고, 걸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고, 신발 구입할 수 있는 돈이 있고, 자연과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친구를 사귈 수 있는 5대 축복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익숙한 길은 그렇지 않은 길보다 짧게 느껴진다. 가야할 길을 잘 몰라서 주뼛주뼛하며 걸을 때 보다 내가 아는 길은 마음이 편하고 이런 저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그렇다. 내가 어디로 갈지 잘 모르면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나 보다. 반환점을 돌아서 올 때 심리적인 부담이 적다. 좀 힘들 경우는 더욱 그렇다. 반환점 전까지는 걸어야 할 길이 늘어나는 것이지만 돌아서 올 때는 걷는 만큼 가야할 길이 줄어들고 또 눈에 익은 길이어서 시간도 훨씬 빨리 가는 것 같다. 인생 중반을 돌아서니 시간이 쏜살같..

단상/일상 2023.02.27 (32)

낙서 31 : 이게 뭔가?

웰 다잉 하기위해서 열심히 운동한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잘 죽기 위해서? 이상하다. 이상할 것 없다. 다 죽더라. 천하를 호령했던 사람도, 벌레처럼 꼼지락거렸던 인간도. 후대에 남을 순애보를 썼던 인간도, 하룻밤 정사에 몸을 떨었던 청춘도 가니 꼭 같더라. 나도 같은 인간이지만 뭘 더 잘 할 수 없나 고민한다, 그래도 내가 낫다는 자만심은 아직 있거든. 추하게 죽고 싶지 않다. 남에게 부채가, 특히 자식에게 그만 돌아 가시지 하는 생각 안 들게 하고 가고 싶다. 죽어서 조문 온 사람들이 속으로 잘 가셨네 하고 내 얼굴 보는 것 싫다. 그런데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이 순간 나는 소맥을 마신다. 몸에 안 좋은 것 알면서 방금 지하실에서 땀 흘리며 운동하고 와서 운동해서 뺀 칼로리 몇배 이상의 열량을 ..

단상/낙서 2023.02.24

새벽에

눈 뜨니 살아있다. 살아 있었으니 눈이 떠졌겠지. 뭔가 온게 있나 셀폰을 집어 든다. 위에서 아래로 주르륵 얼마전 돌아가신 큰 형님 얼굴. 망설이다 대화창 여니 몇 달 전 남긴 메시지 “사랑한다’로 끝났다. 이게 유언이 됐구나. 그냥 눈과 코가 찡하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 턱 아래가 희끗희끗 검고 흰 놈 절반씩이다. 짧아서 표가 덜날뿐. 저쪽도 낮 밤이 있나? 이 세상 생각하며 그리워 할까? 모를 일, 가봐야 알 일, 가서도 모를 일.

단상/일상 2023.02.2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