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 훈련 중 지휘관들이 가장 꺼리는 것이 수류탄 투척훈련이다. 폭발하면 사방팔방 파편이 튀는 위력도 센 무기지만 순전히 손으로만 조작하고 던지는 것이라서 아차 실수하면 여럿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내가 군에서 근무할 때 소대원 중 몇몇은 진짜 수류탄은 직접 던져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교가 던지는 것을 구경만 하고 훈련병들은 모의 수류탄으로 연습하는 것. 군대 용어로 ‘했다치고’.
자대에 배치되었어도 병사들은 진짜 수류탄을 던져볼 기회가 없었다. 간혹 중대에서 보관된 수류탄 중 안전핀이 부러진 것 등의 이유로 폐기해야 할 것이 생기면 중대장이 소대장들 불러서 던져 없애라고 하고, 패기 왕성한 소대장들만 겁도 없이 신나게 던졌다.
철책선 근무 중 상급부대에서 경계근무 점검 순찰 왔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초소에 와서 근무자 2명 중 일병에게 전방 철책선에 무장공비 2명이 침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상황을 상정해 주고 조치하라고 했다.
1명은 기관총 사격 준비, 1명은 적 발견 신호 인접 초소 및 중대 본부로 발신, (가능하면 유선으로 상황 보고 및 지원 요청). 수류탄 투척. 일제 사격 순으로 교육되어 있었는데, 문제는 일병이 수류탄을 손에 들고 안전핀을 뽑지 못하고 덜덜 떨기만 하는 것. 지금껏 진짜 수류탄은 던져본 적이 없었고 모의 수류탄만 던져봤던 군인.
옆에 있던 소대장인 내가 급해서 “수류탄 불량, 사격개시” 라고 고함치고 무조건 갈기라고 야단치니 그나마 사격은 타다당 시작됐고, 인접 초소에서 무슨 일 났냐고 난리난리. 상급부대 순찰 중 실제 상황 가정한 훈련이니 너희들도 지금 총알 박히는 곳에 무조건 쏴라 했더니 그래도 긴가민가 한참 동안 뭉그적.
에라, 모르겠다. “소대장 지원 도착 왔슴다.” 라고 말하고 갖고 있던 M16 탄창 3개째 갈면서 신나게 같이 쐈더니. 검열관이 “됐다 됐어 상황 끝” 해줘서 상황 종료.
검열 온 사람이 갈구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중대장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었는지 큰 탈은 없었다.
그일 이후 며칠 동안 이런 소대원들과 전쟁 나서 같이 싸우면 초기에 대부분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잠을 못 이루었다. 평시에는 잘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안전사고 걱정되고 실제하기 번거로워서 ‘했다치고’식 눈가림 훈련하면 이후 실전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리얼한 문제점을 보았기 때문이다.
최근 군에서 이런저런 안전사고들이 많이 생겼다는 뉴스를 접한다. 훈련 중 얼차려 하다가 죽고, 수류탄 투척훈련 하다가 죽고, 민간인 구조 활동하다가 죽고…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후 발생할 수도 있는 부작용도 염려된다. 지휘 선상에 있는 지휘관들이 책임지고 문책당하는 것은 당연한데, 주변에서 보고 들은 다른 지휘관들은 몸조심하고, ‘좋은 것이 좋다’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했다치고’ 문화가 부활한다면? 그러다가 실제 상항에서 수류탄 안전핀 못 뽑고 벌벌 떠는 군인들이 생긴다면?
필요한 일을 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점을 발생시킨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파악 분석하는 것이 우선 순서다. 다음은 그 문제점을 해결해서 하고자 했던 필요한 일을 안전하고 완벽하게 자신감을 갖고 다시 수행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으니 그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책(下策) 중 하책이다. 그 문제를 일으킨 책임자를 정해진 법에 따라 합당한 책임을 묻고 처벌을 하는 것은 별도의 일 처리 과정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명령 받은 대로 성실히 수행하다가 순직한 젊은이들의 목숨을 가볍게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 신성한 국방의 의무 역시 무겁고 소중하다.
어느 하나의 신념에 몰입되었거나 어느 한 진영에 서 있다는 이유로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지 않고 한 눈, 한쪽 귀만 성하면 방향과 밸런스 감각을 잃고 비틀거리게 된다.
더 나아가서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본인 혹은 진영의 이익과 결부시켜 오도하려는 의중을 가진 자가 혹시나 있을지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하는 것은 국민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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