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위해 캐나다로 이민 왔지만 아직도 못내 아쉬운 것이 한국의 단풍, 그 중에서도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설악산 단풍을 직접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질펀한 정글 같은 느낌이 드는 캐나다 보다는 한국 단풍이 더 예뻐 보인다.
자기와 다른 종이 우글거리는 곳에 서슴없이 들어갈 수 있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다고 한다. 예로부터 어울려서 협력할 수 있었기에 신체적으로 연약한 인간들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졌고, 남의 생각을 받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고가 창조적 문명 건설의 원동력이 되었다.
가을 단풍이 모두 한 색깔이라면 어떨까? 온 산이 빨갛거나 노란색이면 장엄한 느낌은 들지 몰라도 오래 보면 좀 물릴 것 같다. 어느 잎 하나 똑같은 모양과 색깔이 없고 바위 사이로 계속물이 휘돌아 감기는 풍경과 조화로운 백담사 계곡은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얼굴 모양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증오하고, 신념을 같이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으로 나라가 둘로 갈리는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서 이러한 인간의 우수성이 약해지고 오히려 높은 울타리를 치고 같은 종끼리 상대를 향해 으르렁대는 소리가 커져가는 것 같다.
자연을 이루는 연결고리 중 하나만 빠져도 전체가 삐걱댄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면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다름을 틀림(wrong)으로 인식하고, 섞임을 불편하고 순수하지 않음으로 오해하는 것이 안타깝다.
폭염, 가뭄, 산불, 홍수, 바이러스… 범 지구적 재앙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지구촌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고 미워하고, zero-sum식 이분법적 사고로 갈라지는 대신에 이번 가을에는 추위와 폭염을 견딘 단풍잎들이 서로 어울려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즐기며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 경치를 가진 한국도 ‘단풍 같은 사회’를 표방하는 가치관으로 강하고 살기 편한 나라를 만드는데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2024년 9월
단풍이 물들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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