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 14

특별한 나눔

잠에서 깼다. 잠시 죽었다 살아난 기분. 금방 다시 죽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신문을 본다. 29살 꽃다운 나이 여성이 갑자기 뇌사 상태가 돼서 100여명에게 장기기증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는 기사를 봤다. 사랑했던 이를 떠나 보낸 사람들이 무덤 앞에 꽃을 두고 그리워 한다. 살아 생전 곱던 모습, 장한 모습, 다정했던 모습. 그리움에 감동 받아 죽은 자가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서서 나온다면? 끔찍하다. 이곳에서 첫 의료보험증 받을 때 장기기증 서약했다. 사체도 해부용으로 기증할 의사를 묻는 난에는 동의 표시하지 않았고. 죽었지만 발가벗겨 이리저리 잘리기 싫더라. 자는 동안 나는 뭐했나? 모르겠다. 그냥 잤다. 내가 죽으면 내 몸은 어떻게 될까? 벌레 밥이 되고 훌륭한 비료가 될 수도 있겠지. 며칠 ..

단상/일상 2022.10.31

무제

이곳 할로윈 데이 전날 아침. 고국에서 일어난 안 좋은 소식이 전세계에 펴졌다. '안타깝다' '어처구니없다' '슬프다' '화난다' '부끄럽다' 등등의 감정.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제3자의 생각. 졸지에 생 때 같은 분신을 떠나 보낸 이의 마음은 실감 안된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서 보니 더 냉철해 질 수도 있겠다. 신문에 왠만큼의 분석과 재발 방지 대책이 벌써 나와 있네. 불순한 생각만 하지 말고 같은 불행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남의 자의 할 일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 모두 분명 각자 할 일이 있지. 이도 저도 생각 안나면, 황망 중에 떠나신 분을 위해서 기도하면 되겠다.

단상/일상 2022.10.30

오케스트라 지휘자 2

한국 남쪽 단풍은 이제 시작이란다. 내가 사는 이곳은 끝물이다. 뜨는 해 지는 해처럼 도는구나. 인적 드문 산길에는 잎들이 어느새 가지에서 내려와 바닥에 누웠다. 이제 좀 쉬어야지. 싱싱했던 이파리들이 형형색색으로 카펫처럼 바닥에 좌악~ 깔리고, 그 위를 걸으면 조금 미안하기도하고 어찔어찔하다. 마치 밤하늘 총총한 별 고개 들고 쳐다보면 현기증 나듯이. 참 좋네. 그리고 고맙다. 자연의 오케스트라는 누가 지휘하실까?

여운 2022.10.28

오케스트라 지휘자 1

가끔씩 좀 비싼 듯한 연주회 티켓 끊어서 눈 호강, 귀 호강 한다. 내 의지가 아니고 내 옆 힘센 분 뜻에 따른 것이다. 좀 우아해지려면 흥미 없어도 이런 것 들어봐야 한다고. 평소 안 하던 짓도 해봐야 유연해 진다고 내가 주장했던 터이니 반론의 여지가 없어 따라 나서지만, 연주를 감상하다가 문득 어처구니 없어 보이는 생각도 든다. 저 많은 단원 중 어느 한사람이 실제로는 연주 안하고 하는 척만해도 모르겠구나. 각자 악보대로 정확히 연주하면 될 텐데 왜 지휘자는 저렇게 열심히 팔을 휘젓고 있지? 음악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니까 가능한 의문인줄 이해하실 것이다. 실제 이런 질문을 아내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좀 한심하다는 표정과 함께, “지휘자는 단원 한사람의 순간적인 삑사리를 알아채는 것은 물론 자기..

시사 2022.10.27

내가 신부님이 된다면

나는 신부 시켜준데도 안할란다. 적성에 안 맞다.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자질이 안된다. 그 정도는 내가 잘 알고 있지. 아예 나하고 거리가 아주 먼 일 상상하는 것이 때론 재밌다. 새롭기도 하고, 안 할 것이니 부담 없어 홀가분하고 그러니 더 솔직해 질 수도 있고. 내가 신부님이 된다면 다음과 같이 하고 싶다. 1. 성가대 노래 부르는 속도를 지금 보다 두배쯤 빠르게. 즐거운 노래나 장중한 노래나 모두 장송곡 부르는 속도다. 2. 교우들에게 좀 밝은 색 옷 입고 오라고 틈틈이 당부한다. 크리스마스 때도 검정색 일색이다. 3. 제발 내자리라고 매주 같은 자리 앉지 말고 옮겨 앉아서 새 친구 좀 사귀고. 4. 성당 입구 들어올 때 죄 지은 사람 마냥 고개 숙이고 발끝으로 걷지 말고 친정집 찾아오듯 기쁘고..

요설 2022.10.25

위령(慰靈)

11월은 위령(慰靈)의 달. 저승의 영혼들을 기억하고 위하는 달이다. 종교적 가르침을 떠나서 실제 내게 다가오는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떠난 자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진다. 그들이 다져 논 터 위에 내가 서 있다. 이어서 죽음에 대한 자각이다. 나도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 그들을 위하려고 왔지만 나를 위하는 마음이 앞선다. 가신분에 대한 위령이 아닌 나를 위한 기도가 된다. 자리에서 조금 일찍 일어선다. 좀 겸연쩍다.

여운 2022.10.24

구글님

참 고마운 분이시다. 구글님 오시기전에는 선생님이 주로 답을 주셨고, 혼자서 찾아야 할 경우에는 서가 한 켠 가득 채운 아주 비싼 백과사전을 이리저리 들춰야 했다. 그것도 철 지난 정보가 대부분. 이제는 타닥 치면 쑥 답이 나온다. 그것도 아주 상세한 내용으로. 답이 여러 개면 개수 관계없이 좌르르 다 펼쳐 보인다. 이젠 시간과 의욕만 있으면 나는 만물박사가 된다. 그래서 귀명창이 는다. 입이 명창이어야 하는데 귀가 명창이니 뭔가 이상하다고 불편하다. 어느 인문학 교수님이, 창의성은 답을 구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짐으로써 개발된다고 했다. 답은 내 머리에 쑤셔 넣는 것. 질문은 내 잠재력을 끌어 내는 것. 답은 남이 정한 것. 질문은 내가 만든 것. 차라리 구글님이 계시지 않았을 때의 생..

단상/일상 2022.10.22

진흙밭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밭에 개싸움. 진흙이니 꽤 질척거릴 것이다.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질척거리다’란 표현을 두고 말싸움 하고 있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였으니 해당 용어 사용자는 사과하라고, 못한다고. 그 말을 했던 자가 어떤 의도로 사용했는지는 본인만 알겠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상대가 나를 보고 씩 웃는다. “너 방금 날 비웃었지?” “아뇨, 반가워서 웃었습니다.” “…” 서로간 적개심이 가득해서 생긴 일이다. 피차 믿지 못하고 미워하니 무슨 말을 해도 상대는 죽일 놈이 된다. 마치 이혼을 앞둔 부부 사이 같다. 빨리 헤어지는 것이 방법인 파경 직전의 부부. 증거를 보여준다고 국립국어원장을 증인으로 세워 질문한다. “질척거리다에 성적 의미가 있나요?” 점잖은 학자였을 그분이 무슨..

시사 2022.10.20

간식월(肝息月)

자랑 중에 가장 무모한 자랑은? 술 실력 자랑. 한창 때 나보다 술 센 사람 없을 것 같았다. 더 마시고 덜 취하고 상대가 헤롱헤롱 하는 모습보고 속으로 “약한 모습” 하며 으스댔다. 저녁에 반주 몇 잔 하고 자고나서 보면 거실에 불이 켜진 채다. 취중에 불 끄는 것 깜박. 한창 때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 흘러가는 세월 한탄만 할까? 대책이 있어야지. 우선 1달간 간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한다. 간식월(肝息月) 너도 좀 쉬어야지. 1달 후 효과 보고 확대 내지 원상복귀 결정할거다. 그러고 보니 나이 들면 화석이 된다던데 말랑말랑한 채로 늙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평소 안 하던 짓 많이 해보는 것이라고 한다. 내게는 술 안마시는 것이 평소 안 하던 짓이다. 잘됐네. 간식월 효과가 있으면 건..

단상/일상 2022.10.20

낙서 25 : 말장난

“국어탄압이다.” 주요 일간지 톱을 장식한다. “탄압이 얼마나 세면 탑압 됐겠나” 'Top壓(압)' 도대체 무슨 해괴한 단어인가? 바빠 죽겠는데 말장난. 기라성 같은 분들이 천금같은 시간에 모여 보여주는 활동하시는데, 그 피켓을 가슴위에 들고 있는 자들까지 누구 하나 큰 글자 오타를 발견하지 못했다. 알고도 시간이 없어서 대충 한 것이라면 아예 할말이 없고. 리더 집단의 참담한 현실이다.

단상/낙서 2022.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