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이래도 되나?

Chris Jeon 2024. 2. 15. 11:01

 

 

연녹색 바다와 끝없이 펼쳐진 고운 모래 백사장.

새털구름 흩어져 있는 하늘과 맞닿아 있다.

반라의 살찐 사람, 날씬한 사람 긴 의자에 누어서 선탠 하거나

백사장을 거닌다. 아이들은 물장구치며 놀고.

그 사이로 바텐더들이 열심히 칵테일과 맥주를 날라 준다.

모두 무료다.

 

호텔에 식당이 여러 개, 식당별 디저트 종류만해도 30여개가 넘는 것 같다.

저거 많이 남으면 어떻게 처리할까? 걱정 아닌 걱정이 된다.

하루 3끼 먹으니 일주일 정도 되면 질린다.

모두 무료다.

 

자고, 먹고 마시고 놀고(쇼, 골프)…

북미에 사는 사람들이 겨울철에 많이 놀러가는 중남미 국가 패키지 여행 모습이다. 항공권, 공항에서 호텔까지 교통, 호텔 숙박 및 식사/ 음료 모두 포함해서 일정액 지불해서 예약하면 끝. 가격도 비교적 reasonable하다.

 

이곳 겨울이 추우니 합리적인 가격대에 가까운 따뜻한 남쪽 나라 가서 푹 쉬다 오기 딱 좋은 여행이다. 이번에는 좀 덜 지루하게 보내려고 책을 몇 권 가방에 넣어서 갔다. 그중 2권이 불교 관련 상식적인 내용을 쉽게 쓴 서적. 그래서 인연, 윤회, 인과응보, 자비… 같은 단어와 이를 설명하는 내용들이 많다.

 

 

 

시원한 그늘 아래서 술 몇 잔 마시며 책 읽으니 기분이 좀 묘해 진다. 이순간 떨어지는 폭탄 피해서 부서진 건물 지하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 아프리카 어느 나라 퀭한 눈망울을 가진 마른 아이 사진, 입에 거품 물고 정의를 실현한답시고 목쉬며 고함치는 정치인들…

 

내가 분명 더 행복한 것 같다. 그럼 나는 무슨 권리로 이순간 이렇게 세상 편한 자세로 삶을 즐기고 있나? 전생에 복 지어서? 아니면 이생에 이렇게 게으르게 산 적이 있으니 내생에는 힘든 일 하는 소로 태어나나?

 

가까운 스넥바에서 피자 가져와서 먹던 힘센 분이 소근거린다.

“저런 광경을 보니 ‘소돔과 고모라’ 생각이 나요.”

“우리처럼 guilty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으니 완벽한 소돔과 고모라는 아니야.”

 

안락과 쾌락이 가득한 장소에서 불교 서적을 읽던 나로서는 솔직히 조금 혼란스러웠다.

잠시 동안… 그리고 곧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 맥주 몇 잔 했더니 잠 오네. 한숨 자고 저녁에는 쇼 보러 가자.”

책으로 얼굴을 가리니 이내 잠들었다.

그리고 아무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단상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앉은뱅이 용쓴다  (13) 2024.02.25
공부 많이 한 사람  (0) 2024.02.22
반려동물 천도재(遷度齋)  (22) 2024.02.10
2024.01.23 아침 단상: 인구 절벽  (0) 2024.01.23
2024.01.11 아침, 타고 난다는 것  (0) 2024.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