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설

응석 부리는 자녀

Chris Jeon 2021. 10. 1. 11:33

 너무 어른스러운 아이를 대할 때면 안스럽기도 하고 솔직한 심정으로 친근함이 덜 느껴진다. 어떤 이유에서 든 하고 싶은 이야기, 행동을 마음 속에 감추고 아닌 척 하는 것은 어른이 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아버님”하며 큰 절부터 올리는 자식 보다 “아빠”하고 달려와서 덥석 안기는 딸이 더 예쁘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다. 아버지가 계시는 교회에서 느끼는 나의 감정은 덥석 안길 수 있는 아빠가 아닌 봉당 위에 높이 올라앉아 계시는 아버님 같다. 행동거지를 조신하게, 조심조심하고 말도 소근소근 한다. 성가대의 노래도 장엄하고 느리다. 모두 이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청한다. 부모의 눈으로 볼 때 잘못 안하고 자라는 자식이 있던가? 그렇다고 그 때마다 이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울부짖는다면 그 또한 부모의 심경을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큰 죄를 지었다면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어야 하겠지만 매주 그렇게 큰 죄를 짓고 사는 자식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따로 사는 자식이 부모님을 찾아 뵐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양손에 부모님 드실 것을 사서 들고 대문을 들어서는 자식을 맞이하는 부모님의 모습. 안부도 묻고 이것저것 살아가는 모습도 이야기하고. 부모님이 연로하셔도 자식은 부모님께 기댄다. 떠날 때 부모님은 뭔가를 자식손에 더 쥐어 주고 싶고 자식들은 뭔가 더 가져갈 것이 없나 하고 내심 기대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응석 부리는 자녀가 되어 보자. 자녀가 잘못했다고 바로 내치는 부모가 없듯이 내가 죄를 지었어도 무작정 지옥불에 던지시는 그런 아버지는 아닐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냥 말하자. 잘못했더라도 그냥 품에 안겨서 어리광을 부려보자. 만나서 기쁘니 노래도 즐겁고 신나게 부르자. 자꾸 달라고 하는 딸 도둑이 더 이쁘게 보이는 법이다. 원하는 것은 솔직하게 달라고 응석도 부리자. 나를 위해 무엇이든 이루게 해 주실 수 있는 아빠가 계시는 교회에 가는 것이 이세상 부모님 집에 가는 것보다 더 즐겁고 기뻐야 하지 않겠는가?

 

2020년 5월 28일

묵주기도 중 “슬픔의 골짜기에서 울부짖는…” 기도문을 읽다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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