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설

자문자답 1: 믿는다는 것

Chris Jeon 2022. 9. 13. 01:42

 

 

 

못 믿을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한다. 맞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객관적인 증거가 있으므로 믿는다는 것 보다 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럼 믿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무조건 “믿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맞나? 그런 경우 질문하면 믿음이 부족한 것이 되는가?

 

“믿습니다” 이 말 한마디로 내가 믿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믿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 내 마음이 믿게 되는 것이 아닐까?

 

믿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믿어야 할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가 필요하다. 과녁이 확실히 보이지 않으면 자신 있게 화살을 쏠 수 없다.

 

믿음의 대상에 대한 확실한 개념 정립이 안된 경우에는 설사 믿는다 하더라도 잘못된 대상을 믿거나 믿는 방식이 그릇될 수 있다. 맹신이나 광신 같은 것.

 

예를 들어보자. 부활을 믿어라. “예, 믿습니다.”

“그럼 부활이 뭔데?” 대답이 각각 다르다. ‘죽은 자가 관 뚜껑을 열고 살아나오는 것’, ‘영혼이 다시 사는 것’,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죄 씻고 새로운 마음으로 사는 것’… 등등. 참 많다.

 

내가 이해하는 믿음에 따라 삶의 방식도 달라진다. 그래서 지구 종말이 왔다고 믿고 함께 모여서 하늘로 둥둥 떠오르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의문과 질문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의심과는 다른 개념이다. 끊임없는 질문과 답변을 통해 진리를 추구했던 현자의 방식을 생각해 본다.

 

믿음의 대상에 대한 나의 이해가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 아니거나 올바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믿기 위해서는 믿음에 대한 나 자신의 이해가 먼저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문이 들고 이에 따른 질문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의문과 질문이 많고 곰곰이 생각하면 할수록 잘못된 이해가 될 가능성도 줄어들 것이다.

 

“무조건 믿어라.” “진정한 믿음에는 질문이 필요 없다.” 라고 하시는 분도 있다. 그러나 창조주는 인간을 만드셨지 로봇을 만드신 것이 아니다. ‘자유의지’, 내가 좋아하는 단어다. 의문과 질문은 자유의지의 발현이다. 만약 이를 막는다면 창조주의 걸작을 깡통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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