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설

나무늘보

Chris Jeon 2021. 8. 30. 11:37

 

  조직 중에서 가장 변화가 느린 조직은 무엇일까? 2000년전 쓰여진 성경은 일점 일획도 고칠 수 없다고 강조하는 리더가 존재하고 과학적 논리로 입증되어지고 있는 진화론을 적대시하고 “7일만에 우주가 만들어 졌음을 믿읍니다라고 외치는 이들이 믿음이 강한 멤버로 인정되기도 하는 조직, 교회가 바로 그 질문의 답 중 하나가 아닐까 반성해 본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진리다라는 명언이 있듯이 교회도 그 변화를 비켜갈 수는 없다.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고 과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 과학과 종교는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같이 가야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 명언을 통해 교회도 무조건 수용하는 맹종적 믿음과 합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이성적 믿음을 구분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예수가 물 위를 걸으셨다는 기적을 두고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 그랬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맹종적 믿음이라면, 왜 그런 기적을 보이셨을까 혹은 왜 그런 기적을 후세 사람들이 성경에 썼을까 라는 의문을 갖고 숙고하는 것이 이성적인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코로나가 사라진 세상은 기대하기는 어렵고 코로나와 같이 살아가야하는 세상을 맞이할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 많은 신자, 더 큰 건물을 가진 교회가 은혜 받은 교회라는 일부 한국식 믿음의 등식이 무너지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모든 신자들이, 전면을 향한 장의자에 앉아서 소리 높여 찬양하고 목회자는 그 정점에 서서 사자후를 토하는 모습도 바뀔 수밖에 없다. 미사/예배( 이후 미사로 통일)가 끝난 후 밥 짓고 국 끓여 나눠 먹어야 신자간 진정한 유대가 형성된다고 주장하며 미사 보다는 친교에 더 방점을 두는 심심한 이들의 교회 나들이가 이제부터는 어려워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언택트(untact. 비대면컨택트)’라는 신조어가 요즘 많이 사용된다. 사실 비대면이라는 말에는 다른 뜻이 숨어 있다. 카톡을 통한 채팅도 화면에서 얼굴을 보면서 하면 대면이 아닌가? 오히려 비대면이라는 말 중에는 전통적인 대면 방식이 변화된 새로운 대면 방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인터넷을 통해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뛰어넘는 변화된 컨택 방식 속에서 우리는 이미 생활하고 있고 이들이 갖는 장점들이 전통적인 방식의 단점들을 뛰어 넘기 때문에 확산 일로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교회도 모이는 장소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서 단순히 신자들을 교회로 많이 모우는 방법을 고민하기 보다는 신자와 신자, 신자와 교회를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방법을 더 고민해야할 때다.

 

  전통적인 대면이 아니면 굳센 신앙은 기대하기 힘든가? 다니엘처럼 예루살렘이 보이는 다락방 창을 통해 기도했던 사례를 최선의 기도라고 주장하지는 않더라도 교회가 무조건 모여야 의미를 갖는 곳이 아닌, 목회자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전 세계 신자들과 컨택하고 신자들의 신앙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데이터 베이스와 시스템이 구축된 일종의 스튜디오나 연구소와 같은 기능도 더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마스크를 쓰고 앉아 답답해 하면서 뒷자리에 앉은 신자들의 아멘 소리에 비말을 걱정하는 상황에서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 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고 나는 그 최선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거나 추진할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좁게나마 최근에 겪어본 사례에서 교회가 변화에 대한 감각과 확고한 의지가 갖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결정된 사항이니 순명 하라는 것이 신자들의 제안 사항에 대한 답의 전부가 되는 교회도 이제 세상을 구해 달라는 하늘을 향한 기도에 더해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의 변화를 냉철하게 직시하고 종교 본연의 가치를 지키면서 성장시켜 나갈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 절실히 고민하고 용기 있게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본다.언젠가 교황청 실무자가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책임자와 만나시는 장면도 상상해 보면서 지금 나는 온라인을 통해 화상회의를 할 수 있는 앱을 설치한다.  이것이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변화 중 하나가 될 것 같아서이다.

 

2020년 어느날 비대면 화상 성경공부를 준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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