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분노의 닌자 칼

Chris Jeon 2021. 8. 30. 21:54

 

미군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 밖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일명 ‘닌자 폭탄’로 불리는 초정밀 암살용 미사일을 사용하여 급진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테러 기획자를 암살한 현장 사진이 신문에 실린 것을 보았다. 6개의 칼날이 찢고 들어간 자국이 선명한 차량의 잔해를 보면서, 사건의 전말에 대한 이해 보다는 안에 앉아 있었던 암살 대상자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말초적 호기심이 앞서는 것을 느끼고 나 자신이 조금 민망해졌다.

 

 난민 철수를 돕던 자국의 꽃 같은 청춘 13명이 죽고 많은 병사들을 다치게한 적을 향해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다짐했던 강대국 대통령의 약속이 이행된 것이니 여론은 암살 실행에 대해 우호적인 것 같다. 대통령도 이와 같은 보복 작전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며 다시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이번 아프간 사태는 911 테러에 대해 같은 분노를 표출하며 복수를 다짐했던 이전 대통령에 의해서 시작된 것으로 안다. 20년 동안 복수가 복수를 낳고 최근의 자살 폭탄 테러, 닌자칼 복수에 이어 또다른 복수가 이어질 기세다. 양측 국민의 사상적 배경을 이루고 있는 종교의 ‘이웃 사랑’이라는 근본 가르침은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어느 석학이 말하기를, 문명의 발전에 따라 물리적 수단의 진보는 엄청나게 이루어 졌지만 희노애락을 느끼고 처리하는 인간의 감정 메커니즘은 크게 변한 것이 없어서 이 둘 간의 간격이 현대사회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리더가 화내고 분노를 표출하는 메커니즘은 석기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는데, 그 리더 한 명이 해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것이다. 기자 회견 중 분노의 눈물을 보이는 세계 최강국 리더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 걱정스러운 생각이 든다.

 

 요즘 사람들은 전쟁을 일종의 컴퓨터 게임처럼 여긴다고 한다. 군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비극의 현장 지구 반대편에서 안락한 소파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 족집게처럼 적을 찾아 없애는 장면을 원하면 슬로우 모션으로 감상할 수 있다. 역시 지구 반대편 안전한 벙커에서 무인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이 피를 보면 역겨워할 것이라는 배려로 무기체계에 장착된 카메라 화면을 흑백으로 처리하는 세심함도 있다. 오락게임과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구분하기 어려운 딱 좋은 환경이다.

 

 무엇이 이러한 참극을 만들었는지? 이러한 비극을 종식시킬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무엇인지? 문제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해결을 위한 절박함 없이, 현재의 안락함에 취해사는 나를 포함한 다수 구경꾼들의 무신경이 이러한 분노와 복수가 되풀이되는데 일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든다.

 

 “Do something.” 필자에게 영적 도움을 많이 주신 폴란드에서 온 신부님이 약간은 어눌한 영어로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너무나 큰 문제라고 뒤로 물러서지 말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닌자 칼날의 위력에 호기심을 가지는 대신에 그 칼날을 쓰는 자와 그 칼날에 찢긴 자의 번민과 고통을 먼저 생각하자. 내가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복수의 칼날을 마음 속으로 갈고 있었다면 조용히 그 칼을 내려놓자.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온 것은 칼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다. 나라의 지도자는 누구보다도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사랑을 필요로 한다. 분노의 눈물을 보이며 닌자 칼을 갈기 보다는 머리에는 차가운 이성을, 가슴에는 뜨거운 사랑을 품고 지구 최강의 나라 리더로서 임기중에 이 비극의 연결 고리를 끊는 현명한 지도자가 될 것을 내가 기도해 주는 것도 ‘do something’의 한가지가 될 것으로 믿는다.

 

2021.8.27

닌자 폭탄으로 IS 테러 기획자를 암살한 기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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