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사부작사부작

Chris Jeon 2024. 5. 20. 11:12

 

 

인도로 망명한 티벳 노승에게 기자가 물었다. “그 험한 히말라야 산맥을 어떻게 넘어 오셨습니까?” 그 노승의 대답,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왔지요.”

 

할머니들 밭에서 호미질 하시는 것 볼 때 경운기로 그냥 확 갈아 엎는 광경만 생각하면 좀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한나절 일 끝내고 중참 잡수실 때 보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고랑들이 깨끗해진 것을 보고 놀란다.

 

‘사부작사부작’,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계속 가볍게 행동하는 모양을 뜻한다. 사부작사부작이 가능해지는데 전제 조건이 있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그 일을 즐길 수 있는 것.

 

빨리빨리 왕창왕창 문화에 젖은 우리가 사부작사부작의 의미를 잠시 잊고 산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드는 시간 생각했을 때 가성비가 낮아. 일꾼 사든지 기계 빌려 한꺼번에 해치우지…

 

아침에 집 앞 도로변에 휴지 한 장 주우면 지구 한평이 깨끗해 졌고 이틀 계속하면 두평으로 늘어난다. 지나가는 이웃에게 “Hi” 하고 인사 했더니 밝게 웃는다. 내일 한 번 더 하면 지구인 중 두 사람 웃게 할 수 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좋아하면 사부작사부작 해보자. 하다가 그만 두더라도 한만큼 좋아진다는 확신이 서면 사부작사부작이 과정의 즐거움과 결과의 보람을 가져다 준다.

 

한 삽 퍼서 옮기면 한 삽분 만큼의 흙이 옮겨지고, 두 삽 뜨면 두 삽분만큼… 사부작사부작 파서 옮겼더니 산이 없어졌더라.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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