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고스톱 유감

Chris Jeon 2024. 2. 29. 02:44

 

 

대한민국은 비교적 “공평한 사회”다. 공평이란 단어가 추상적이고 포괄적이므로, 범위를 좁혀 말한다면, 대한민국은 “계층 간의 간격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사회”로 이해할 수 있다. 반대 댓글이 벌떼 같이 달릴 것 같아 걱정된다. 그래서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둔다. 내 말이 아니고 어느 교수님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분의 논지인 즉, 어느 사회나 계층이 있어 왔고 현재 존재하고 있다. 한국도 조선시대만 봐도 양반, 중인, 상민의 3개 계층으로 구분되어 왔는데, 구한말 이래 사회구조가 붕괴되고 해방 후 새로운 구조 형성이 시작되었으므로 계층 구분이 오래전 부터 확실하게 자리잡은 서구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계층간 간격이 적고 이동도 비교적 용이하다는 이야기다.

 

일명 선진국이라는 나라로 오래전 이민오신 분들이 “이 나라는 이렇소”하며 자신 있게 말씀하시는 경우, 확실히 빠진 부분이 있다면, 이 나라의 상류층 모습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상류층에 속해 있지 않는 이상 그들의 세계에 접근할 수도 없고 그들이 내게 다가오는 경우도 없다.

 

그러나 한국도 이제 계층의 구분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평소 뉴스 미디어를 통해 치열하게 경쟁하는듯 보이는 재벌들도 명절이 되면 “사돈 어른” 하며 서로 인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만의 사회가 구축되고 있다. 계층 이동의 성공 신화는 정주영 회장이 마지막이라는 말이 이러한 한국의 계층 구분이 확실해짐에 대한 독설이다.

 

‘내가 이룩한 성취의 대부분이 운이다’ 라는 제목의 글을 봤다. 결론이 좋다. 내 운에 감사하며 겸손하자는 것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은, 좋은 가정 환경, 우수한 유전자, 상류사회에 속한 가족들…과 같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이 내 성취의 대부분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환경이란 것이  상류층이 가지고 있는 환경과 대략 일치한다.

 

몇가지 의문들이 생긴다. 먼저 성취의 의미와 달성도를 어떻게 정의하거나 계량화 할 수 있을까?

하버드 대학 졸업이 큰 성취가 맞지만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서 뜻을 두어 정진하신 스님의 깨달음 역시 큰 성취라고 말할 수 있다.

 

다리 밑에서 살던 거지 가족이 단칸 셋방으로 이사하면서 느끼는 성취감이 50평 아파트에서 80평 아파트로 옮기는 부자의 성취감 보다 작을까?

 

그럼 성취의 7할이 운이라고 하는 것을 수식으로 표현해 보자.

성취 = 운(70%) + 노력(30%)’. 이 경우 아무리 노력해봤자 내 성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3할을 넘지 못한다. 전혀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면 70%의 성공은 보장된다.

 

‘성취 = 운(70%) X 노력(30%)’. 운과 노력이라는 두 요소 중 어느 것 하나가 ‘0’이면 결과는 ‘꽝’이다. 반대로 어느 것 하나가 부족하더라도 나머지가 크면 결과는 커진다. 이 경우 설사 운이 부족하더라도 노력만 하면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사실, 상위 계층으로 이동 못하는 것이 꼭 좌절이고 불공정이라고 단정할 필요도 없다. 미국에서 히스패닉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대략 19% 정도된다고 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3D 업종에 종사하고 있어서 이들을 미국에서 다 쫓아내면 나라의 운영이 어려워진다.

 

어느 조직이든 20:80의 법칙이 적용된다. 상류층 20% 나머지 80%. 나머지 80%가 운 타령하고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좌절하거나 분노하지는 않고 맡은바 할일을 묵묵히 하고 있기에 나라라는 조직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제 ‘금수저 흙수저’ 타령은 그만하면 좋겠다. 실제 흙으로 만든 수저는 없다. 본인이 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몸 건강하고 생각 올바르면 최소한 스테인레스로 만든 수저는 갖고 태어났으니 그마저 감사하고 반짝반짝하게 닦아 요긴하게 사용하는 것이 맞다. 내가 원망한다고 금수저를 공짜로 입에 물려줄 세상도 아니다.

 

금수저가 아니더라도 밥 먹는데 아무 지장 없다. 시간 나면 방에 누워 있지 말고 감나무 밑에 입이라도 벌리고 누워있는 노력을 하자. 혹시 아는가? 감이 내 입으로 떨어지는 행운이 찾아올지. ‘운칠기삼(運七技三)’ 고스톱의 격언을 신봉하며 방에 누워 빈둥대는 자의 입에는 먼지만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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