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불량품 or 걸작

Chris Jeon 2023. 11. 17.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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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드민턴 리시브 하려고 자세 잡고 서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 다리 종아리를 누가 때린 듯 날카로운 통증을 느낀다. 후위에 서 있는 파트너가 실수로 라켓으로 내 종아리를 쳤는가 싶어 뒤돌아 보면 무안해할까봐 모른척하고 게임 끝내고 의자에 앉아서 보니 종아리가 탱탱 붓고 쥐가 난듯 걷기 불편하다.

 

며칠 견디다가 안되겠다 싶어 병원가서 검사해보니 종아리 근육 파열이라고 한다. 이럴 수가… 400km를 열흘만에 걸어서 주파하고 평지보다 산길 걷기를 더 좋아하는 내가, 그냥 서 있었는데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다니 잘못 만들어진 물건인 것 같다. 가만히 세워 둔 차가 고장 났다면 불량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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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 그분의 자녀들이 죽고 죽이고 난리다. 어느 한쪽이 멸족될 때까지 안 끝날 기세다. 거슬러 올라가면 수천년 그래왔다. 듣기로는 그분이 직접 본인 닮게 만드셨다는데, 그분 닮은 자녀들이 왜 이럴까? 이것도 신비인가? 혹시 많이 만드시다 보니 불량품 생긴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리 정교한 로켓도 100% 안전 장담 못하지. 99.999999…%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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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인간 중에 불량품이 있다. 순도가 낮거나 잘못된 부품이 들어가서 생긴 불량품들. 대부분이 좋은 제품이라도 한 두 불량품으로 인해서 인간 전체가 욕먹고 애써 만드신 그분까지 의심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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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잘 만든 차라도 10만 km, 평균 5년 이상 주행하면 손 좀 보면서 굴려야 한다. 연식이 아주 오래된 차는 조심조심 몰아야 하고. 그런데 인간의 몸은 적당히 관리하면 주요 부품은 100년 까지 큰 탈없이 굴러간다. 죽기 전까지 간 갈고 심장 가는 사람 극히 드물다.

 

대신 전제 조건이 붙는다. ‘적당히 관리해야 한다는 것’. 세월에 따라 몸은 약해져 가는데 마음은 이팔청춘이라 매일 펄쩍펄쩍 뛰어다니니 그대로 두면 대형 사고 칠 것 같아서 몸 안에 있는 자동 경보 시스템이 작동한다. Slow down please. 종아리에 따끔한 통증과 함께 쥐가 나게해서 한동안 집에서 쉬면서 깨닫게 한다.  걸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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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조폭 집단이 싸움을 벌리면 어떻게 될까? 치고 박고 난리통에 그들 중 상당수는 죽거나 다친다. 119에 신고가 들어가고 경찰이 출동해서 모조리 잡아간다. 두 조폭 집단, 즉 불량품 집단은 소멸되고 사회의 순도는 높아진다. 오묘한 시스템, 이것도 아전인수격 일종의 진화인가?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 두 조폭 집단의 싸움통에 애꿎은 행인이 많이 다치는 것은 또 뭔가? 그분의 고향 중동지역에서 아이들이 죽고 여인들이 울부짖어야 하는 상황은 설명이 안된다.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다는 논리라면 굳이 걸작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논리 전개상 말문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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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잡상은 여기서 접는다. 어쭙잖게 하늘 위 그분까지 들먹이며 신비를 파헤치려 한 죄 참으로 크다. 나도 그 불량품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고민은 계속된다. 언젠가 답을 주시겠지. 그분이 만드신 세상에도 불량품이란 것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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