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쉬어가는 것

Chris Jeon 2021. 10. 25. 21:41

 

 Thanksgiving Day도 지나고 이제 곧 눈발이 날릴 것 같으니 골프장도 하나둘씩 문을 닫고 필드는 깊은 눈 속에 묻혀 겨울을 날 것이다.

 

 이민 와서 지인의 권유로 집 가까운 곳 클럽의 멤버가 되어 한동안 매우,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골프 쳤던 기억이 난다. 사는 지역이 온난하여 일년내내 라운딩이 가능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골프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형편에 비해 과용한 것이 아까워서 거의 의무감으로 골프장으로 매일 출근한 것 같아 조금 민망하다.

 

 어느 것 한가지에 몰두하는 것 좋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나의 전문 분야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취미 생활만큼은 조금 달리 생각해 본다. 자신의 업으로 삼지 않을 바에야 두루 섭렵도 좋은 방법으로 생각된다. 세상에 좋은 음식이 한가지가 아니듯이 재미있고 유익한 취미도 한가지로 한정할 수 없을 것이다. 흥미를 가지고 즐길 수 있는 취미 여러가지를 가질 수 있다면 삶이 더 다양해질 것 같다.

 

 몰두가 가져오는 긍정적인 효과가 많지만 부정적 측면은 균형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거의 매일 골프장 출입을 해서 얻는 것도 많았지만 아쉬운 것도 있다. 그 시간에 돈 벌 궁리를 더 했으면, 독서를 더 했으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더 늘렸을 수도… 등등. 균형 잡힌 삶이란 화두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대한민국 골프 인구는 20세 이상 성인의 15.1%, 636만명’(출처:대한골프협회 통계). 조명으로 대낮 같이 밝은 골프장에서 야간 라운딩을 즐기는 사진을 한국 신문에서 봤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 결과다. 골프장은 한정되어 있고 이를 즐기려는 인구수는 늘다 보니 주야간 가동해도 모자란다.

 

 ‘자연보호는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공감되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 완벽한 실현은 어렵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좋지만 ‘더불어’가 되는 순간부터 간섭이 일어나는 것이 이치다. 그래서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적절한’ ‘어느정도 수용 가능한’ 이란 애매한 기준의 자연에 대한 간섭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몇 가지 이유로 골프를 안 한지 거의 10년이 지났다. 그 10년 동안 일도 열심 했지만 트레킹이란 새로운 취미를 알게 됐다. 골프 보다 더 자연과 더불어 운동할 수 있고 시간도 덜 들고 운동 효과도 알차다. 현실적으로 매우 저렴한 경비를 요구하는 가성비 높은 운동이다. 골프를 쉬면서 얻을 수 있었던 새로운 좋은 취미다.

 

 숲이 잘려 나가서 잔디 밭이 되고, 잔디만을 원하는 인간이 사용하는 제초제로 물고기 숨쉬기가 어려워진 마당에, 동물들이 먹이를 구할 시간에 대낮 같은 조명으로 겁주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여유 있게 공놀이 하는 인간들을 보고 자연은 무엇이라고 할까? 그들의 소리가 궁금해진다.

 

 쉬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시니어란 소리 듣는 나이가 되어서 돈 버는 일을 그만 둔 이후 주위 사람들이 “요즘 뭐 하세요” 라고 물을 때 마다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냥 논다고 하면 바로 백수가 연상된다.

 

 

 

백설에 파묻힌 필드가 그냥 노는 것은 아닐 것 같다. 그간 스파이크에 찢긴 생채기도 치료해야 하고 이것저것 떠나서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은 생각도 들 것 같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 내년에도 인간과 다시 부대낄 수 있는 힘이 생길 것 아닌가?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으니 그 중간 어느 지점에서 쉴 수 있는 권리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균형이 잡힌다.

 

 야간에 불 밝힌 골프장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 결과이니까. 대신 올겨울 깊은 눈에 파묻힐 토론토 골프장 풍경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 다음부터 내게 “뭐 하며 지내세요” 라고 누가 물으면, 쉬는 일 합니다” 라고 답할 작정이다. 또 반골 기질 나온다 할까 봐 조금 걱정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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