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반성

이기적인 용서

Chris Jeon 2021. 10. 13. 19:40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 용서의 사전적 의미다. 여기서 ‘덮어준다’ 는 의미는 ‘없앤다’ 라는 뜻 보다 ‘드러내지 않고 숨겨둔다는 의미가 강하다. 사전적 의미만 놓고 볼 때 내 마음 속에 있는 상대에 대한 미움의 감정까지 포함하는 용서를 말하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

 

  용서는 통상 물리적 용서와 마음의 용서로 나눌 수 있다. 쉬운 예로, 상대가 나를 공개리에 모욕해서 내 명예가 실추되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경우, 용서한다면, 그 상대가 내게 저질렀던 모욕 행위에 대해서 형사, 민사상 책임을 묻는 것을 포함해서 일체의 대응 행동을 하지 않는 물리적 용서가 우선이고, 그로 인해서 내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상대에 대한 미운 감정까지 없애는 것, 즉 마음의 용서까지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완전한 용서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물리적 용서와 마음의 용서까지 다 포함하는 것이 이상적인 용서인 것은 맞지만 과연 그와 같은 완전한 용서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못한다’ 는 말이 있다. 마음의 용서까지 했다고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실상은 용서할 대상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실제로 없앤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마음속 깊이 덮어둔 경우가 많다. 묻어둔 감정을 애써 없는 척 외면하고 그 감정이 살아날 때 마다 수양이 부족한 자신을 자책하는 것.

 

  나는 어려운 마음의 용서를 위해 몸부림치기 보다는, ‘이기적 용서’ 라는 말에 마음이 더 끌린다. 이루기 어려운 마음의 용서는 잠시 접어두고 대신 내 마음속 부정적 감정을 인정하고 잘 관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못한 상대를 미워하고 저주해도 상대는 속 시원하게 꼬꾸라지지 않고 더 싱싱하게 잘 사는 경우가 많으니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그 부정적 감정을 이성의 상자 안에 갈무리해 두는 것이다.

 

  그 놈이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 마다 신을 찾거나 자신의 부족함을 질책하기 앞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이를 갈며 마음의 용서를 연습하는 것이다. “그래, 잘 먹고 잘살아라. 나는 내가 더 잘 살기 위해서 이 부정적 감정을 내려 놓겠다.” 너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애써 부정적 감정을 갈무리하는 것. 이것이 평범한 나에게는 완전한 용서를 위한 시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거짓말도 자주 하면 참말처럼 들리는 법이다. 이를 갈며 용서하다 보면 어느덧 진정한 마음의 용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20년 6월 30일

‘내가 진정 용서한 경우가 있었던가’ 라는 의문이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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