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참 좋은 운동이다. 돈과 시간이 좀 많이 든다 싶어 그렇지 70이 넘어도 age shooter를 노려볼 수 있는 운동이라서 더 매력이 있다.
아주 오랜만에 필드에 나갔다. 후배분들이 고맙게도 초청해준 덕이다. 약속일 전 평생 잔소리꾼인 아내가 조언을 준다. 옛날 생각 잊어버리시고 마음 편히 즐기다 오세요. 맞은 말이다. 당연히 그래야지.
티 박스에 서니 약간 현기증이 난다. 주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나무와 풀들도 나를 지켜보는 것 같다. 순간 몸이 뻣뻣해지고 드라이버의 바람 가르는 소리에 비해서 공은 초라하게 러프로 힘없이 휘어져간다.
세컨드 샷 거리가 많이 남았다. 조금이라도 더 가야지 하는 마음에 평소 잘 안 썼던 3번 우드를 잡는다. 공이 놓인 곳이 풀이 긴 러프임을 깨닫지 못한다. 죽을 힘을 다해 쳤더니 공이 아닌 애꿎은 땅을 때리고 말았다. 다행히도 공은 러프를 벗어나서 100 야드쯤 굴러간 후 페어웨이에서 나를 조신하게 기다린다.
이쯤 되어서야 조금 정신을 차린다. 남은 거리에 관계없이 이전에 내가 자신 있었던 아이언을 뽑아 들고 그린 앞쪽으로만 가달라는 심정으로 툭 치니 맑고 가벼운 소리가 나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멀리 날아가서 그린 조금 못 미친 지점에 떨어진다.
그러면 그렇지 옛날 실력 어디 가나?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가서 그린을 쳐다보니 30야드쯤 남았다. 이정도 거리에서 핀에 붙이는 것이 내 특기였지. 공이 홀에 바로 들어가지는 않더라도 ‘OK’ 소리가 민망하지 않을 정도로 공이 핀에 붙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칩샷을 한다.
샷을 한 후, 아니다 샷을 하면서 그린을 보니 공이 보이지 않는다. 아뿔사, 공이 머리를 맞고 깜짝 놀라 몇 번 구른 뒤 바로 앞 잔디 속에 머리를 쳐박고 떨고 있다. 공을 보지 않고 공이 핀에 붙는 장관을 기대하며 그린을 먼저 본 탓이다.
후배님들 앞에서 인상 쓸 수는 없어 웃음을 잃지 않고 퍼팅을 했으나, 사실 퍼팅인들 제대로 됐겠는가? 어차피 트리플 보기 이상인데 하는 심정으로 툭툭치니 공이 홀 좌우를 왔다 갔다 했다.
홀 아웃을 하고 다음 홀로 가는 동안 푸른 하늘을 쳐다본다. 내가 조금 부끄럽다. 매일 죽기 살기로 연습하는 프로들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는 것이 골프인데, 근 10년 가까이 연습하지 않은 내가 그림 같은 샷을 기대했다. 말로는 마음을 비워야지 하면서도 속으로는 열심히 할 때 몇 번 해본, 그것도 우연일 수도 있는 싱글의 추억이 현실인양 착각하는 모습이 가소롭다.
욕심 ->고통 ->반성의 사이클을 18홀 내내 반복하면서 라운딩을 끝내고 나니 조금 피곤해졌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묻는다. “라운딩 어땠어요?” 큰소리로 시원하게 대답한다. “참 좋았어. 많이 느꼈지!” 진심이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라운딩할 기회가 있다면 내 생각과 몸이 과연 일치할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여전히 들지 않는다.
2021년 9월
후배님들과 오랜만의 라운딩을 마치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