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뜰에 사는 다람쥐가 선물을 가져왔다.
야생 호두 스무 개가 문 옆 구석진 곳에 놓여 있다.
문 앞에서 두발을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이
이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먹던 땅콩을 짐짓 흘려준 것이 고마워서 일까?
일단 참한 뜻을 받기로 하고
두 알만 남기고 나머지는 집안으로 들였다.
너의 마음은 안다.
그만큼의 호두를 모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올겨울을 새끼와 나기 위해서
그 작은 입이 얼얼하도록 물어 날랐을 것이다.
일단 문 앞에 두고 시간 날때마다 땅을 파고 묻을 작정이었겠지.
내 문 앞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밉지 않다.
그 많은 호두를 하루 밤사이 다 묻을 수는 없을 터
밤사이 스컹크나 라쿤이 뺏아갈 것 같아
매일 두 개씩 내놓기로 한 것이다.
기특하게도 내 뜻을 알아차린 것인지
밤사이 두 알씩 꾸준히 사라진다.
오늘 아침에는 라쿤도 담장위에서 어슬렁거린다.
너도 겨울을 나야 할 것인데
다람쥐만 생각해준 내가 조금 미안하구나.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아야할 이유는 알지만
그 까만 눈망울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
인간도 다 큰 자식은 내쳐야 하는 것이 맞지만
품속에서 떠나 보내기가 쉽지는 않다.
강해져야 살 수 있는 야생의 법칙을 알면서도
두 손 모으고 서있는 그 녀석을 못 이기듯이
오늘도 품속의 자식을 어루만지며 사는 이가 많다.
어미 닭이 다 자란 병아리를 쫓아내는 것이
새끼를 위함이 아니라 자신이 살고자 하는 본능이라고
어느 철학자자가 한 말이 기억난다.
내 이기심을 사랑으로 포장한 것은 아닌지
내 생각만으로 그들을 어렵게 한 것은 아닌지
어쭙잖은 동정심이 자연의 순리를 어지럽힌 것은 아닌지
오늘도 아리송함에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2021년 초가을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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