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매년 피어나는 쓰레기 꽃

Chris Jeon 2021. 9. 6. 10:52

넓은 공원에 오색 꽃이 영롱하게 핀 것 같은 사진이다.

 자세히 보면 모두가 쓰레기다. 한번 사용하고 버린 천막이 주종을 이룬다. 최근 영국 레딩에서 열린 뮤직페스티벌에 100만명 넘는 참가자들이 몰렸고 행사가 끝난 후 그들이 머물렀던 텐트와 쓰레기를 그대로 놓고 간 것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공연한 페스티벌이니 참 좋은 음악을 듣고 즐겼을 관중들이 남긴 흔적이 너무 처참하다.

 

  2014816일 프란치스코 교황 서울 방문 시 수십만명의 군중이 모여 거행된 시복식 후 광화문 광장이 깔끔하게 치워진 뒷모습이 기사화된 것을 본 적이 있다. 무엇이 이러한 극명한 차이를 가져왔을까?

 

  첫번째는, 한국인의 질서의식과 교양 수준이 영국인 보다 높기 때문이라는 가정이다. 한국인은 기분이 좋은 가정일지 몰라도 선진국임을 자처하는 영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생활 전반을 놓고 봤을 때 이러한 극명한 차이를 가져올 만큼 양 국민의 의식 수준차가 큰 것 같지는 않다.

 

  두번째는, 행사 참석자의 질적 수준에 의한 것이라는 가정이다. 시복식은 종교적 행사이므로 다소 거룩한 사람들이 참석했고, , 힙합이 주종이 된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한 사람들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아서 생긴 결과라는 가정이 될 수 있는데, 음악가들이 입장에서는 종교인과 예술가의 인간적 수준 차이에 절대 동의할 것 같지 않다. 사실 종교의 입장에서 본다 해도, 전례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음악과 미술 같은 예술 부분이므로 이같은 가정에 적극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세번째는 주최측의 준비 및 진행의 수준 차이에서 기인된 것이라는 가정이다. 가장 현실적인 가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기사를 읽어 보면 레딩 페스티벌 주최측에서도 할 만큼 노력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주최 측은 행사전 관객들에게 쓰레기를 가져가 달라고 호소했다. 이전에 열렸던 페스티벌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사진을 보여주며 읍소했으나 관객들은 이를 외면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다시 가져가거나 지정된 장소에서 처리한다는 것은 일종의 강제 행위다. 완전한 자유, 즉 본능에 맡겨 둔다면, 발생된 쓰레기를 그 자리에 버리고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짐승이 쓰레기 치우는 광경을 본적이 없다. 인간은 동물에서 특별히 진화된 존재이기 때문에 본능을 통제할 의식이 있고, 그 결과 자유를 일정부분 제한하는 규제에 대해서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경우 순응하고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위에서 언급한 영국 레딩 페스티벌과 한국 광화문 시복식의 차이의 원인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인의 규제에 따르고 적응하는 능력은 탁월하다고 자부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말하기를, 미국사람들을 한국의 만원 지하철에 우겨 넣고 다니면 곧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좁고 경쟁이 심한 환경에서 단련된, 참고 질서를 지키는 의식이 한민족의 DNA에 이미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서구 선진국 국민들이 여유로운 상황에서는 아주 예절 바른 것처럼 보이다가 본인이 급박한 상황이 되면 태도가 돌변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이러한 점이 바로 첫번째 가정에 대한 의문을 다소 해소해 준다. 평소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100만 가까운 인파가 몰려 군중 속의 묻혀 내가 불편해질 때 본능이 표출되는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두번째 가정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쉬워진다. 시복식이라는 종교행사가 주는 분위기는 우리의 본능 보다는 이성을 더 자극한다. 버리고 싶어도 참는 이성, 그냥 돌아가고 싶어도 남의 눈치가 보여 쓰레기 하나라도 줍는 이성이 발동되는 것이다. 록이나 힙합의 격한 리듬에 몸을 맡기고 술을 먹고 춤도 추며 밤을 지새는 군중의 열기는 이성 보다는 본능을 일깨울 가능성이 더 크다.

 

  세번째는 주최측의 준비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레딩 페스티벌 주최측의 대처는 수차례 간곡하게 부탁했다가 전부다. 시복식 주최측의 준비 과정은 더 디테일 하고 적극적이다. 참가자들이 출발하는 각 성당별로 사전 쓰레기 처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했다. 참가자 11 쓰레기 봉투를 지급했다. 수천명의 자원 봉사자를 배치하여 쓰레기 투기를 감독하고 홍보했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레옹 페스티벌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는 주최측에서 더욱 간절하게 쓰레기를 되가져가 주실 것을 읍소 했다고 하나, 결과는 마찬가지가 됐다. 같은 식이면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사진을 우리가 보게 될 것이다.

 

  이글을 통해 필자가 꼭 맞는 해결책의 정답을 제시할 의도는 없고 그럴 능력도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 페스티벌의 결과가 쓰레기 더미라는 것을 한탄하지만 말고 무엇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면밀히 분석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이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현 주최측을 너무 나무란 것 같아서 한가지 아이디어를 주겠다. 내년 페스티벌 때는 가장 인기있는 그룹으로 하여금 쓰레기 버리지 말기를 주제로한 음악을 작사 작곡하여 신나는 때창을 하도록 유도해 볼 것을 제안한다. “쓰레기는 우리의 영혼을 좀먹어요오~~ 더 모이면 지구도 먹어 버려요오~~ 우리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라암~ 영혼이 아름다운 친구우~~ 아름다운 음악을 계속 즐기기 위해에~~ 우리가 쓰레기를 없애 버리자아~~” 괜찮은 가사인가?

 

202193

영국 레딩 페스티벌 현장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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