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한 순간이다

Chris Jeon 2025. 3. 10. 17:57

 

 

 

 

40년여년 전 같은 중대에서 히히덕거리며 근무했던 동기가 아침에 카톡으로 재미있는(?) 자료를 일부분 사진 찍어서 보내왔다. 대법원 판결문, 판사 이회창. 인터넷 search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내용은, 전방 중대에서 일어난 불행 사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 모 사단의 주요 인물이 비무장지대(DMZ)를 통해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버렸는데 당시 DMZ로 들어가는 문(통문) 관리를 책임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대한 형사상 책임을 확정 짓는 것.

 

통문 관리 책임 소대장(K): 당일 사단장 포상 휴가로 부재 중이었으므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중대장, 대대장: 책임 소대장 부재 시 대리 근무자 지정해야 하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주 이유로 1차, 2차 책임이 있다.

 

사고 나기 얼마전 사단장이 해당 지역 담당하고 있는 중대 시찰 왔었는데 시찰 후 사기 진작용으로 소대장 중 한 명에게 주라고 포상 휴가증 주고 갔음. 사단장 관심 사항이 통문이었으므로 당시 통문 관리 담당이었던 K에게 포상 휴가증이 돌아갔음.

 

통문 관리 소대장 부재 시 당연히 중대 선임 소대장에게 대리 근무 명령 내려야 하는데 당시 제대 날짜만 기다리던 중대장은 이를 깜박했음. 설사 대리 근무자를 임명했다손 치더라도 그 상황은 막지 못했을 것임. 해당 인물이 DMZ내 작전을 책임지는 자였으므로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갔다하는데 그 복잡한 통문 출입 절차를 다 지키는 사람 없었음.

 

사고 나고 하루 후 중대장이 전화로 “내가 니 대리 근무하라고 안 했나?” 라고 묻기에 그냥 “안 하셨는데요” 라고 답하니 “그래…” 라고 힘없이 전화 끊었음.

 

2년 넘게 근무하면서도 사단장 시찰 오는 경우가 드물고, 와도 소대장 포상 휴가 주는 일 흔치 않고, 운 좋게 통문 책임 소대장에서 그 휴가증이 돌아가고, 그런 사고 일어나는 것은 참 드문데, 마침 소대장이 휴가 중이던 지역에서 발생했고, 중대장은 당연히 해야 할 대리 근무 명령을 깜박 했고…

 

그래서 꽃다운 나이에 아무 생각 없이 뛰어다니던 젊은 소대장 두 명은 무사했고 대신 제대 얼마 안 남았던 중대장과 중령 계급까지 올라와서 방어 핵심 지역에서 근무하면서 진급을 꿈꾸던 대대장은 경력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고.

 

인생이라는 것이 참 바람에 뒹구는 낙엽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한순간, 한 생각, 한 행동에 의해서 방향이 결정되는 것. 좀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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