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어느 자리에서 내 취미가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 이라 말해버렸다.
내가 쓴 글들이 작품이 아니라는, 나름 겸손함을 표현했는데 말해 놓고 보니
내 생각은 잡념이 대부분인데 그걸 글로 정리할 필요가 있을까?
좀 민망해진다.
그러나 생각 안하고 살 수는 없으니 설사 잡념이라도 글로 표현해 놓고 들여다 보면 반성이라도 할 수 있겠지.
나름 합리화한다.
‘본질’… 어렵게 느껴진다.
뭐 내 식대로, 내 수준대로 해석해서 적용하면 되지.
회사에서 ‘생산성 향상’ 주제로 간부 회의를 열었다. 회의 도중에 좀 젊은 간부의 말이 짧다.
나이 조금 더 든 선배가 질책한다.
“왜 반말하나?” “제가 언제 반말했습니까?” “너는 평소에도…건방진 것” …
‘생산성 향상을 위한 회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말투를 주제로한 싸움판으로 변한다.
사장님의 중재로 어렵게 싸움이 수습되고 나름 진지한 회의가 진행돼서 결론이 도출된다.
내년에는 100%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전력 투구한다.
짝짝짝 박수치고 단합을 위한 2차 회식 자리로 이동한다.
그런데 남는 것이 없다. 총론에는 모두 찬성, 그럼 how to?
총론은 고상하고 크다. 그리고 명확하다. 그래서 모두 쉽게 이해하고 찬성한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시킬 detail이 없으면 공허하고 오히려 방향을 잃게 된다.
지붕 위에서 별을 따겠다고 허우적대다 밑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본질을 알고, 내 실력을 알고,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how to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이념이나 구호에 능한 무리들이 많다. 이른바 선동꾼이다.
‘위대한 나라’, ‘민주화’, ‘민심을 받들어서’, ‘불순 세력 척결’, ‘역사 바로 세우기’…
모두 아름답고 해야 할 일이다.
총론 찬성.
그런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총론이 지향하는 본질을 망각하고 상대 반말에 싸움판으로 변한다.
협의를 위한 장소가 각개전투장으로 변한다.
고민을 거듭해서 나오는 detail한 대책은 안보이고 구호만 난무한다.
마치 제대로 안된 노조 파업장에서나 볼 수 있는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오로지 자기 주장만 담은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구호만 목이 쉬도록 외치는 것.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는 윈윈하기 위한 숙고나 논의는 이루어질 수 없다.
상대는 오로지 무찔러야 할 적이다.
양봉에서 두 벌집을 합봉 할 때 일정기간 마주 대 놓는다고 한다고 한다.
서로 한참을 노려보고 붕붕 거리다 보면 피차 익숙해지고 닮게 된다고 한다.
징그럽게 싸우기만 하는 두집단을 보고 있는 관중들도 은연중에 두 집단을 닮아 가는 것 같다.
양쪽으로 편이 갈려 발 밑 관중석이 꺼지는 줄 모르고 어느 한 편을 죽기 살기로 응원한다.
두 광란의 집단을 말리고 조정할 심판관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있는데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
어느 날 그분(들)이 나와서 뚜껑 열린 주전자를 식힐 수 있으면 다행이겠지만 아니면 갈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이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결론이 난다.
어느 누가 죽든, 같이 죽든 아니면 기적 같은 잠재력을 발휘해서 담을 뛰어 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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