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한 사전을 찾아보면 ‘신용’이라고 대표적으로 번역된다.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세금 낼 때 내 account를 보면 credit와 balance 두가지 숫자가 표시되는데, credit는 지난 기간 동안 내가 내야 할 것 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납부했을 때 환급돼서 적립된 숫자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번에 낼 세금에 credit를 제외한 금액이 balance로 표시된다.
교회에서는 나쁜 짓 많이 한 사람도 죽기전에 고해하고 잘못을 빌면 용서받는다고 한다. 곧이 곧 대로 해석할 때, 좋은 일도 좀 했지만 나쁜 짓을 더 많이 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이 세상을 하직했을 경우 고해할 기회를 놓쳐서 용서 받을 기회마저 놓치면 억울할 것 같다는 우둔한 생각도 든다.
선하게도 살고 때론 내 양심에 그스르는 짓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사실 선과 악의 개념도 추상적이고 내가 한 착한 일과 나쁜 일이 구체적으로 보여지는 것도 아니고 만져지지도 않으니 대충 넘어가고 잊어버릴 수도 있다.
내가 살아가면서 행한 선과 악의 모든 행위가 건건이 credit으로 차곡차곡 쌓인다고 생각 하면 어떨까? 선행은 +크레딧, 악행은 -크레딧. 그래서 여정의 종착지에 도착하면 이 둘을 차액인 balance에 따라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조금 전 지나가는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했으니 크레딧이 조금 올랐고, 방금 아내에게 인상 썼으니 감점 됐고… 이렇게 생각하고 살면 매 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을 것 같다. 혹시 강박관념에서 올 수도 있는 증상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나는 속물이어서 눈 앞에 보이고 계산되지 않으면 잘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매일 매일 어영부영 하다가 어느 날 죄의 양이 훨씬 많은 ‘삶의 기록부’를 들고 심판대 앞에 서 있는 나를 상상해 보면 참 황당해 질 것 같다.
사실 저 세상이 내 삶의 기록부란 것이 필요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내 떠난 후 모인 지인들이 “아까운 분 떠났어”라는 아쉬움을 남길 수 있도록 평소 내 마음속에 선악의 대차대조표를 만들며 사는 것이 헛된 노력은 아닐 것 같다.
2024년 10월 중순
만추의 정경이 내 마음에 와 닿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cIV1pUBzJv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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