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지와(井中之蛙), 우물 안 개구리다. 이어서 정중지인(井中之人)을 상상해 본다.
사람이 우물안에 갇혀 지내면 개구리처럼 될까? 좀 다를 것 같다.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슬기로운 사람’이란 뜻이고,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철학적 표현도 있다.
“하늘은 동그랗고, 지금 내게 보이는 만큼 크고, 세상은 내가 사는 이곳 바닥 만하다.”
"저 하늘의 높이는 얼마나 될까? 내가 느끼는 바람은 어디에서 올까? 저 높은 곳을 올라가면 또 무엇이 보일까?"
이와 같이 개구리와 인간의 생각은 달라질 것 같다. 인간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을 이성과 논리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개구리 닮아가는 ‘정중지인’이 보인다.
내가 가진 생각과 경험만이 전부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이 우주가 마치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기애(自己愛)가 지나친 사람들.
교회에서 교우간 친목과 건강을 위해 활동하는 댄스 모임의 연습 광경을 보고, “성스러운 교회에서 춤이라는 것이 가당치 않다.”라고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 1960년대 댄스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축축하고 음침한 불빛 아래에서 남녀가 안고 돌아가던, 그 옛날 우물안에 아직도 살고 있는 ‘정중지와’가 떠올려 진다.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좋은 뜻을 내세우면서 국수주의적 생각과 행동을 하는 소위 ‘국뽕’에 잠겨 있는 사람들 역시 쇄국정책을 펼쳤던 대원군이 만든 우물 속에서 아직도 살고 있는 듯하다.
개구리가 사는 우물안은 비교적 안전하다. 뱀을 만날 기회도 적고 사람들에게 밟힐 확률도 적다. 하지만 세상은 변한다. 우물 밖 개구리들이 세상의 변화에 맞서 진화하면서 더 강한 종으로 거듭나는 동안에 우물 안 개구리는 제 수명을 다하면 끝이 난다.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선진국(先進國)은 글자의 뜻처럼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어야 선진국이고 전진을 멈추는 순간 그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 아닌 뒷걸음 치는 나라 후진국(後進國)이 되는 운명에 처한다.
우물 속에서 산다고 모두 개구리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크게는 지구라는 우물 속에서, 작게는 내가 사는 동네라는 우물 안에서 살고 있지만, 인간의 생각이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기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칭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내 자신을 우물속에 가두고 안주하지 않도록 매일 하늘과 별을 보면서 생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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