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약속글 6 : 당해봐야

Chris Jeon 2023. 5. 12. 02:44

마박몸김

 

 

동네 공원에 산책 갔다가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노인 한 분의 신발 끈이 풀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마음속으로 잘 안되는 영어로 작문해서 “신발 끈이 풀어졌네요.” 라고 알려 드렸다. 그러자 그분이 웃으며 하시는 말씀이, “저 앞쪽 벤치에 가서 매려고 해요, 고맙소.”

 

자기도 신발 끈 풀어진 줄 알지만 평지에서 허리 구부리지 못해서 저 앞에 있는 벤치에 발 올려 놓고 매겠다는 뜻이다. 그 말을 듣고 왠지 마음이 짠했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나도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허리에 살이 좀 붙은 것 같아서 일주일 전부터 윗몸 일으키기 운동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부터 엉덩이 위쪽 허리 부분이 뻐근해서 몸을 앞으로 굽히기 불편하다. 외출하려고 양말 신을 때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한발을 올려 놓고 바둥댄다. 화가 난다.

 

나는 아직도 내가 늙었다는 느낌이 안 든다. 항상 보는 얼굴이니 변함이 없는 것 같고, 아직 나를 할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도 없고, 잘 걷고 잘 먹고 잘 잔다. 힘도 남아 있어 나뭇가지 자를 때 다 큰 아들은 사다리를 잡고 내가 자르려 올라간다.

 

하지만 나도 늙어 가고 있음이 확실하다. 짠한 마음은 남의 일이기 때문이고 내가 화나는 것은 내 일이므로 그렇다. 늙음이 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내 앞에 선 그 놈을 보니 화가 난 것이겠지.

 

당해보면 누구나 안다. 불 만져 보고 뜨거운 줄 모르는 사람 없다. 지혜로운 사람 되려면 소 잃기 전에 외양간 고칠 줄 알아야 하는데, 허리가 아파봐야 나이 드는 줄 알고,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닥쳐야 기후 변화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개인이나 나라나 마찬가지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곰곰이 생각하고, 자세히 관찰하면 최소한 내일을 위해 오늘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이 먹으면 늙는다는 것은 상식인데, 무릎도 예전 같지 않고, 술 몇 잔 먹고 잔 후  속이 더부룩해 지면 “내가 벌써” 라며 화 내기 전에 늙음이라는 자연의 순리를 깜빡 잊고 살았음을 자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당하기 전에 미리 준비할 줄 아는 사람 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임을 양말 신으려고 버둥대다 깨달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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