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천국

내 마음속 999당

Chris Jeon 2021. 8. 24. 21:47

 

  20년전 캐나다로 이민 올 때 빅토리아 섬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진 밴쿠버아일랜드를 정착지로 정했다. 이유는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자연을 가진 곳 중 하나라는 친구의 말에 솔깃해서 였다. 친구 왈, “그 섬은 999당”이라고 했다. 천당보다 조금 못한 곳.  과연 기후, 공기, 물 좋고 4계절 레저가 모두 가능한 곳이어서 그 당시 다소 팍팍했던 경제 사정은 잠시 잊고 매우 만족한 초기 이민 생활을 즐겼다.

 

  15년을 그곳에서 살다가 비즈니스 때문에 사스케쳔주로 이사했다. 내가 그곳으로 이사 간다는 말을 듣고 주변의 친구들이 대부분 만류했다. 사방이 지평선으로 둘러싸인 곳이어서 겨울에는 콧물이 얼 정도로 춥고 여름에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모기가 많고 등등. 과연 내가 간 곳의 자연은 특별했다. 한곳에 서서 시간에 따라 반대로 돌아서기만 하면 해돋이와 해넘이 같이 볼 수 있을 정도로 광활했고, 여름에는 모기 뿐만 아니라 온갖 벌레들이 하늘을 덮고, 한겨울 영하 37도를 겪고 나니 지금 살고 있는 토론토 겨울은 너무나 온난했다.

 

  그런 특별한 환경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많은 고객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중 한 분이 B.C주 밴프로 여행 갔다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너무 갑갑했다'고... 내가 사스케쳔주의 자연을 혹독했다고 하지 않고 특별하다고 했던 이유는, 우리가 사는 모든 곳이 특별할 뿐 최상이나 혹독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평선으로 둘러싸인 광활한 평야에 끝도 없이 피어난 노란색 카놀라(Canola) 꽃이 펼쳐내는 장관, 한밤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빛, 무엇보다도 그러한 자연을 닮아 순박한 지역 주민 등. 이러한 것들은 내게는 혹독하다고 표현될 수도 있는 추위나 모기떼의 공습을 상쇄하고도 남는 매력적인 것이었다.

 

 이 세상 어느 곳이 좋기만 한 곳이 있겠는가? 한대지방은 춥고 열대 지방은 덥고 4계절이 있는 곳은 날씨가 변덕스럽다고 할 것이고존재 자체의 본질은 변함이 없는데 인간들은 자신의 느낌이나 기분에 따라 좋게도 나쁘게도 해석한다. 땀 날 때는 추운 곳이 좋아 보이고 산에 오래 살면 들판이 그리워지는 식이다.

 

 “일체유심조라는 불교식 가르침을 들지 않더라도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린 것이다. 천당과 지옥은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한 공간이며 천당으로 볼 것인가 지옥으로 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그분께서, 자신이 만든 인간들이 살도록 만들어 주신 곳이라면 모든 곳이 천당과 같은 곳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사람들이 천당에서 지옥처럼 살아갈 뿐이다.

 

                                                                                                                  2021714

                                                                                     습한 날씨에 집콕하니 조금 짜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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