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전쟁 관람자

Chris Jeon 2022. 3. 9. 12:40

 

 

과문의 소치인지는 몰라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렇듯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거의 일치단결해서 한 편을 들고, 운동 경기 보듯 전황이 전세계로 실황 중계되는 전쟁은 처음인 것 같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다.

 

러시아와 미국으로 대표되는 동, 서 양 진영의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쳐 판이 커지고 물러설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인터넷, 셀폰이라는 IT수단이 일상화된 시점이어서 사람들이 전쟁터를 위에서 보듯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마추어적 분석을 해 본다.

 

아침에 신문에서 동영상 2개와 사진 1장을 봤다.

 

피난길에 가족과 헤어진 것 같은 어린아이가 한손에는 과자를 들고 다른 손에는 비닐 봉지에 담은 나름 피난짐을 들고 혼자 두리번거리며 울며 걸어가는 모습의 동영상이다. 조그만 과자와 비닐 봉지 피난짐을 꼭 쥐고 있는 작은 손이 눈에 밟힌다.

 

다른 동영상은 포로로 잡힌 앳된 얼굴의 러시아 군인에게 우크라이나 아줌마가 TEA와 마른 빵을 건네니 그 젊은 포로가 울먹이며 목이 메게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다. 아침에 웃으며 출근한 내 아들 모습과 오버랩 되어 가슴이 저려온다.

 

마지막 한 장의 사진은, 피난길을 나섰다가 러시아군의 박격포탄이 옆에 떨어져 죽은 일가족 가족 3명의 시신이 갈 위에 널브러진 광경이다. 부모와 젊은 자식으로 추정된다. 그들 옆에는 가방 몇 개와 반려견이 들어있는 케이지 한 개가 뒹군다.  저 가방에는 황급하게 쑤셔 넣은 옷가지, 약간의 음식이 들어 있으리라.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다.

 

역사 이래 전쟁은 무수히 있어왔고 근자에도 세계 도처에 우리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던 전쟁도 많았다.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수십년을 끌어왔지만 내가 했던 것이라고는 네플릭스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활약했던 영웅들을 다룬 영화를 감상하는 정도였다.

 

내 옆에 포탄이 떨어지고 사랑했던 가족이 죽고 나 역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보지 않는 이상 어떻게 그들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겠는가 마는, 간접적이지만 전쟁의 참상을 매일 보고 들으니, 우리가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이 맞나 하는 회의가 든다.

 

‘만물의 영장(靈長)’ ‘만물’은 어느 범위까지 포함할까? 생명체가 있는 것만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성경 창세기를 보면 공중과 땅에 사는 모든 생명체를 지칭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영장의 뜻은 무엇인가? 모든 생명체의 우두머리, 가장 지적인 존재, 영성을 가진 존재 등 해석이 다양하다. 어쨌든 ‘영장’은 다른 종 보다 가장 우월한 존재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차치하고, 우월한자가 가져야할 덕목은 무엇일까? 약한 자를 정복하는 것? 무시하는 것? 괴롭히는 것? 모두 아닌 것 같다. 우월한 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이런 덕목을 상실한 우월한 자는 사슴을 사냥하는 사자와 다름이 없다. 아니, 더 못하다. 사자는 배고플 때를 제외하고는 사슴을 죽이지 않는다.

 

인간이 진정한 만물의 영장이 되기 위해서는 ‘영장’의 의미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아쉽게도 내가 가진 얕은 사고 수준으로는 벅차다. 그래서 우선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태어났다’로 바꿔 생각하기로 한다.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좋은 환경에 태어났어도 결과적으로는 태어나지 않은 것 보다 못한 경우도 있지 않은가? 현재 전쟁을 주도하는 러시아의 푸 모씨 생각이 난다.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나는 제삼자다. 먼 나라 선진국에 사는 덕분에 안전하고 따뜻한 방에서, 전쟁 실황 중계를 보며 흥분하기도 하고 약간 분노하기도 하는 구경꾼. 그 분노의 결과가 이렇게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횡설수설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나 역시 만물의 영장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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