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무협지 추억

Chris Jeon 2022. 3. 7. 03:16

 

 

무협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5대 원칙.

 

1. 제1권에 등장하는 최고 고수는 절대 최고 고수가 아니다.

   내용이 전개될수록 점점 더 강한 고수가 등장한다.

 

2. 주인공 보다 더 잘생긴 남자는 남장 여인이다.

   주인공은 최고 미남이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3. 주인공이 절벽으로 떨어지면 반드시 무공이 더 강해져서 살아 돌아온다.

   선한 자는 죽지 않는다. 다만 시련을 겪을 뿐이다.

 

4. 마공을 쓰는 자는 선한 목적을 가졌더라도 반드시 패하거나 죽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5. 아내 한 명과 평생 해로하는 주인공은 없다.

   대부분 여러 미녀들과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권선징악(勸善懲惡), 해피앤딩(Happy Ending)이다.

 

초등학교 시절 형님이 보던 무협지 맛을 알게 되어 하루에 대여섯권씩 독파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교양서적 읽을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왠만한 검법 초식은 줄줄 외울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절대 죽지 않는 주인공의 권선징악의 스토리는 요즘 세대들이 좋아하는 판타지적 매력을 가졌던 것 같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루어 주는 것이 판타지 소설의 매력이다. 누구나 불로장생의 욕망을 가지고 산다. 남보다 강해지고 싶고, 잘나고 싶고, 기왕이면 즐거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나쁜 놈이 꼬꾸라지는 것을 보면 통쾌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바라는 것이 노력한다고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노력이 기회를 만나야 가능해진다. 기회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마음 편하다.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한 세상에 던져졌다는 자조도 든다.

 

더 심각한 것은 욕망이란 것은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얼마나 이루어야 내 욕망이 채워질 것인지는 내 자신을 포함해서 아무도 모른다. 욕망은 마냥 지속된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결론은 대다수가 100% 만족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스트레스의 본질이다. 욕망은 누른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분출되는 욕망을 다른 형태로 승화시키든지 아니면 조금식 빼 줘야 한다. 안 그러면 터지거나 속병이 든다.

 

요즘 세상은 이런 스트레스 배출 장치가 비교적 다양하고 또 허용 범위도 넓어진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의 배출 장치만큼은 좋아진 것 같다. 심지어 마리화나를 합법화하는 나라의 모습은 보면 그렇다. 하지만 조금씩 상위 수준 욕구에 대한 배출 장치를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내가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는 공정 사회 시스템인가? 신분, 지위 상승의 기회는 공평한가?

 

판타지 소설을 다소 황당하고 유치한 장르로 취급하는 분들도 있다. 고상한 고전을 읽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절대 무공을 가진 주인공이 권선징악하고 결국 해피앤딩으로 끝나는 무협지를 읽고 불만과 스트레스를 달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나보다 별로 더 훌륭할 것 같지도 않은 인물들이 나라를 이끌겠다고 설치고, 이런 자들의 이전투구(泥田鬪狗)식 싸움을 지켜봐야 하고, 그 중 한 명이 실제 리더가 될 수밖에 없는 무력함. 그런 와중에 산불이 착한 이들이 터전을 집어 삼키니, 무협지가 없었다면 직접 칼 들고 뛰쳐나오고 싶은 사람들을 소설 주인공이 달래 줬다.

 

2022년 3월

문득 무협지 읽었던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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