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글쓰기 14

왜 글을 쓰는가 3

‘숙성’이란 단어의 뜻을 천천히 익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멋스러워 보인다. 글자 순서를 뒤집으면 ‘성숙’이 되니 더욱 그렇다. 글쓰기를 하면서 컴퓨터에 ‘숙성방’을 만들어 현재 작업 중인 글을 넣어 둔다. 불완전했던 글이 술 익어 가듯 천천히 맛있게 익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드러내고 싶은 교만, 곰곰이 생각 않는 조급함, 너무 뜨거웠던 감정. 이런 것들이 곰삭아 내 글이 성숙되어 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이번 글이 부족하면, 다음 글의 키가 더 자랄 것을 기대하면서. 아이를 키우듯, 만사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는 지루함 보다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더 크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지혜를 글을 쓰며 배운다.

단상/글쓰기 2021.09.09

나를 본다는 것 2

가끔 내 손가락 끝에 눈이 하나 더 달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이 없을 때도 그렇고 비보호 좌회전할 때 차창 밖으로 왼손을 내밀어 보면 상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는 직진차를 훨씬 쉽게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나는 나를 직접 볼 수 없다. 내가 내 모습을 보기 위한 방법은 몇 가지 있다. 첫째, 거울에 비쳐보는 방법이다. 가끔 거울 표면이 고르지 못하여 일그러진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비쳐진 모습이 현재의 내 것이라고 믿을 만하다. 단지 내 생각과 마음은 비쳐지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둘째, 사진을 찍어 보는 방법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현재의 내모습은 아니다. 금방 찍은 사진도 수초전의 내 모습이다. 특히 요즘은 포토샵 기술이 발전해서 나 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운 얼굴이 ..

단상/글쓰기 2021.09.06

왜 글을 쓰는가 2

그 놈의 역병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지면서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방법을 생각하던 중 불현듯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전문 교육을 받은 바가 없고 독서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 글을 자주 써온 것도 아닌 사람이 말이다. 회사 생활 중 문서는 많이 다루어 보고 사보 기자 하면서 깔끔하게 쓴다는 칭찬을 받는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본 용기일 수도 있겠다. 60 여년 지난 생활을 돌이켜 보면 나름대로 참 많이 보고 들었고 고민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걸 바탕으로 아는 체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희미한 기억 뿐이다. 이것 마저 조만간 사라져 버릴 것인데… 남이 기억해줄 만한 업적이 없으면 나라도 나를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의 마지막 문턱에 서서 자신에 대한 ..

단상/글쓰기 2021.09.01

왜 글을 쓰는가 1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말을 한다. 하지만 그것을 글로 남기는 일은 드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게으름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은 쉽다. 그냥 떠 올려진다. 오만가지 생각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글로 쓰는 것은 다르다.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구성하고 다듬고…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보통의 사람은 자신의 집을 짓기 보다는 남이 지어 놓은 집에서 사는 것을 더 선호한다. 둘째, 증거를 남기기 싫어한다. 글은 남는다. 한번 써 놓은 것은 변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니 오롯이 내가 쓴 것은 내 책임으로 남는다. 허튼 생각이나 그냥 해본 소리라면 누가 그것에 대해 책임지고 싶어하겠는가? 깊이 없는 생각이나 말로 자신의 낮은 수준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단상/글쓰기 2021.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