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딸이 블로그를 소개해줬을 때 가끔씩 깜박거리는 아빠가 걱정스러워서 머리 좀 쓰게 할 요량이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흔쾌히 OK했다.
사실 그 당시 글 쓰는 것이 취미는 아니었지만 회사 생활 할 때 이런저런 기안서나 보고서를 꽤 깔끔하게 쓴다는 칭찬 받은 기억은 있어서 작문 하는 것이 별로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딸이 만들어준 account를 통해 들어와서 이리저리 둘러보니 흥미로웠다. ‘인간관계 단절’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방에 앉아서 전 지구인과 접촉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관계를 맺는 방법이 달라졌을 뿐 역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먼저 방향을 정했다. 참고로 한 격언은 모 시인이 말한 “개구리는 준비 운동 안하고 물에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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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100개 정도의 글을 써 보자. 글의 내용은 내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 내 방의 간판도 달아야 한다. 고민 좀 했다. 기왕에 가상의 공간에 들어왔으니 가장 좋은 문패를 달자. ‘천국’. 그러고 보니 ‘천국’은 이미 저 하늘 위에 계신다는 어느 분이 사용하시고 있는 주인이 있는 곳이라 조금 바꿨다. ‘재미있는 천국’.
우선 내 경험한 것을 몇 편 써서 올리니 찾아 오시는 손님이 없다. “그래 내가 먼저 찾아가서 인사 드려야 예의지”. 떡 준비할 필요는 없어서 편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취향은 맞아야 친구 될 수 있으니 그냥 수수하게 일상을 기록하시는 분들을 주로 찾아 뵙고 인사 드렸다.
어느 정도 지나고 보니 댓글이란 것이 중요함을 느꼈다. 내가 다는 댓글도 그렇고 답글 다는 것도 허투루 할 일이 아님을 느낀다. 댓글도 내가 쓰는 글 한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좀 성가신 댓글들도 많다. 비즈니스 차원에서 댓글 다시는 분들이나 아주 가끔씩 본인 스트레스 풀기 위해서 밤거리를 배회하듯 찾아 오시는 분들. 조금 고민하다가 ‘삭제’ 혹은 ‘차단’ 기능을 활용하기로 했다.
내 집은 내 취향대로 꾸밀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세상 모든 사람 친구 삼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가끔씩 내 블로그 보는 가까운 지인들이 격려 겸 조언도 한다. “점점 좋아지는 것 같다”. “칼럼과 같은 느낌이 난다”. “좀 건조하고 어렵고 뾰족하다”. “너 답다”…
이중에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말은, “너 답다.”이다. 내가 생각한 것을 글로 바꿔서 정리한 글이니 나 다워야 맞다. 그래야 내 글이다.
그래서 글 쓸 때 가능한 내가 경험을 쓸려고 노력한다. 머리속에서 생각한 내용이라도 인용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급적 남이 이야기한 내용을 차용하기 보다는 틀릴 수도 있고 투박해 보일지라도 내 생각을 가감 없이 내 보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지려고 한다.
한 3년하다보니 모인 글이 400편 정도 된다. 가끔씩 지난 글을 읽어 보면 고칠 부분이 많이 보인다. 그 당시 허술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내 생각이 바뀐 탓도 있으리라.
허술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고치고 생각이 바뀐 부분은 그대로 두기로 한다. 내 생각이 바뀐 것을 이어서 보는 것도 의미 있다.
글 중에서도 유독 맘에 드는 글이 있고 그냥 그런 정도라고 생각되는 글도 많다. 맘에 드는 글은 바로 오픈 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그런 글일수록 덜렁 올려 놓고 나중에 다시 보면 이곳 저곳 고칠 부문이 눈에 많이 띈다.
그래서 블로그 시작하고 나서 얼마후에 만든 내 파일, ‘숙성방’을 만들길 잘했다 싶다. 글을 써서 바로 게시하지 않고 숙성방에 얼마동안 넣어두고 익힌 후 꺼내는 것.
블로그 활동한 덕분에 지역 신문에도 자주 기고하게 되어서 지나가다 만난 사람들로부터 “당신 글 잘 읽고 있소.” 라는 인사 들으면 기쁘다. 어쩌다가 소식 끊겼던 친구로부터 “니 아직 살아있네.” 라는 연락도 오고.
앞으로도 열심히 블로그 활동할 계획이다. 그러다가 손이 떨리고 횡설수설 하게 되면 그만 둘 것이다. 그 시점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고 내 옆 힘센 사람이 정할 것이다.
언젠가는 그 날이 올 것 같아서 슬슬 내가 쓴 글들을 정리 정돈하는 일을 시작해볼 작정이다. 간추리고 다듬고 분류해서 지난 내 생각들을 나의 보물로 만드는 것.
나 떠나고 나서 내 사진 보고 그리워할 사람 많지 않을 것 같지만 내 글 보물은 꽤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 같다. 그것도 생생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