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글쓰기

왜 글을 쓰는가 4 : 적자생존

Chris Jeon 2022. 9. 17. 01:27

 

 

 

다윈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참 친숙한 분이시다. 어느 분야나 불쑥 나타나셔서 꼭 필요한 이론을 제공해 주신다. 글쓰기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바로 ‘적자생존’ 이론이다. '적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 이 말을 사실 그대로 믿을 분은 없을 것으로 본다. 많이 알고 있는 아제 개그다.

 

정권 잡고 500년 동안 일기 쓴 정부는 유사이래  ‘조선 왕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사관이 왕을 따라다니면서 왕과 주변 신하들이 하는 행동을 빠짐없이 적은 기록물인 사초(史草)를 만들고, 왕조차 볼 수 없는 비공개 문서로 관리해 왔다.

 

누가 내 옆에서 내 언행을 낱낱이 기록하고 그 기록을 대를 이어 남기고 또 그것을 후세 사람들이 반면교사로 삼는다고 생각하면 언행 조심 안 하고는 못 배길 것 같다. 만인지상 왕들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못하고 산 것도 이 덕분이 아닌가 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말과 행동을 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의식은 대부분 문제가 크게 터진 이후에만 가능하다. ‘~아무개 실록’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내가 개인 사관(史官)을 두면 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 그러니 내가 직접 쓰는 수밖에 없다.

 

내가 직접 쓰는 것인 만큼 객관성에 문제가 될 수 있겠다. 부끄러운 것 좀 감추고 그럴듯하게 각색하기도 하고…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니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자기 변명도 가능할 것이다.

 

'Better than nothing'. 너무 옛날식 이야기만 한 것 같아 영어 한번 써본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보다 낫다.” 누구나 양심이란 것은 가지고 있으니 각색할 때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반성이 된 것이다. ‘내로남불식’으로 내용을 바꿀 때 양심의 거울 빛에 눈이 좀 부실 것이다.

 

내 생각을 일기 쓰듯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블벗님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실 것으로 본다. 사진 한 장도 일기고 몇 자 글로 이루어진 짧은 단상도 일기다. 여백으로 두면 어떠리. 그 여백속에 있는 내 느낌을 읽을 수만 있다면 그것도 내 일기다.

 

순간의 잘못된 생각과 언행으로 평생을 고생하시는 분도 있고 심지어 천수를 다하지 못한 분도 있다. 그분들 옆에 사관(史官)이 있었거나 아니면 일기라는 사관을 두어 그 당시 잘못을 억제할 수 있었다면 그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적자생존’,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다윈 할아버지는 참 고마우신 분이다.

'단상 >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댓글이란 것  (0) 2024.01.05
약속글 2: 익명  (22) 2022.12.29
댓글 단상 2  (0) 2021.11.18
묵은지  (4) 2021.11.09
댓글 단상1  (0) 202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