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가까이 있는 분들에게는 무례하고 평생 한번 볼까 말까 하는 사람에게는 공손하다.
예(禮)는 인간의 이성이 만들어 낸 것이다.
먹이 찾아 집에 들어온 들개가 주인에게 예를 갖춰 음식 구걸하지는 않는다.
동물에게는 인간과 같은 이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예를 갖추려면 내 본성을 이성으로 관리해야 한다.
반말로 “어이 이리와” 하면 쉬울 것도 “~님 이쪽으로 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해야 한다.
그럼 거의 매일 매시간 보는 사람에게 무례해지기 쉬운 까닭은 무엇일까?
편해서 그렇다 혹은 쉽게 생각해서 그렇다.
애써서 이성을 작동시키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 조금 본성 쪽으로 움직인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조금 더 동물 쪽으로 내 마음이 옮겨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지 않고 쉽게 행동한 결과다.
반대로 어쩌다 한번 보는 사람에게는 공손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대를 어렵게 생각해서 조심하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 들어갈 때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지듯 내 이성이 이리저리 작동해서 나의 몸가짐과 말투를 조신하게 만든다.
보다 더 성숙한 인간이 된 것이다.
함부로 생각하지 않고 신중하게 행동한 결과다.
그렇다면 내가 편하고 쉽게 대하는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내가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대할 때 통상 나는 그쪽 마음까지 헤아리지는 않는다.
그저 내 편한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뿐이다.
그러나 상대방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라도 단정할 수는 없다.
내게 무례한 언사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 드물고, 얼마 동안은 이해하거나 참을 수 있을지라도 언젠가는 그동안 견뎠던 감정이 폭발할 가능성이 높다.
항상 나와 가까이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더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길가다 부딪쳐 기분 상한 사람은 헤어지면 일단 상황이 끝나지만 늘 관계 맺고 생활하는 사람과 감정이 틀어지면 내 삶이 힘들어진다.
예(禮)의 출발은 상대를 존중하고 나의 격을 높이려는 노력에서 출발한다.
편하고 쉽다는 생각에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놓치고 나의 격을 낮게 보이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와 늘, 자주 보며 사는 것이 당연한 듯 대하고 지내왔던 사람들에게 혹시 있었을 수도 있는 나의 무례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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