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선상(線上) 어느 곳

Chris Jeon 2024. 8. 26. 19:07

 

 

 

날씨가 덥다. 섭씨 몇 도부터 덥다고 해야 하나? 춥다는 기준은? 명확하게 가르기 어렵다. 지극히 뜨거운 점과 차가운 점을 잇는 그 어느 선상에 있다. 내가 춥게 느끼면 추운 것이고 더우면 더운 것이다.

 

만약 선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세상이 있다면 그들은 본인들이 선함을 인식할 수 있을까? 악이 있기 때문에 선이란 개념이 존재한다. 이들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은 동일체이며 어느 한쪽이 없으면 나머지도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종교적 관점을 떠나서 하는 이야기임을 부연한다.

 

어느 동기부여 강사가 인간의 대표적인 부정적 감정 쉰 여개가 달린 나무를 그려 놓고 그 둥치를 원망심으로 설명하던 것이 생각난다. 문득 그 부정적 감정과 반대인 긍정적 감정들은 과연 별개의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우리가 말하는 추상적인 개념은 양 극단을 잇는 선상의 어느 부분에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겸손과 교만의 예를 들어보자. 겸손의 반대쪽은 교만이다. 반대로 교만의 반대편은 겸손이 된다. 겸손과 교만은 한 선상에 있고 나는 그 선상 어느 곳에 서있다.

 

최근 읽은 좋은 글 중에서 훌륭한 인품을 갈구하는 내용을 많이 보았다. 그 중 상당수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별개로 보고 바람직하지 않은 어느 한쪽을 없앰으로써 본인이 원하는 좋은 것들로 채울 수 있다는 논지를 펼친다.

 

원래 한 선상, 한 몸인데 어떻게 없애 버릴 수가 있을까? 내가 시기심이 많다는 것을 자각했다면 그 시기심을 없애겠다고 몸부림치지 말고 조용히 그 반대편으로 내 생각이 움직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좋은 생각도 나쁜 생각도 내 마음속에 같이 담겨 있고 그 둘은 별개가 아닌 한 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나쁜 감정을 없애겠다고 나랑 싸울 것이 아니라 나쁨을 나쁨으로 인식하고 그 반대편으로 마음을 돌리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어느 수양이 깊으신 분이 말한 화를 다스리는 법을 되새기며 글을 맺는다.

 

'화 없는 나를 만들 수는 없다. 화는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본능적 감정이다. 솟구치는 화를 누르기만 하면 안에 쌓여 독이 된다.  대신, 화가 올라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할 수 있도록 수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이놈이 올라오는구나라고 인식만 할 수 있다면 그 화는 작아지거나 소멸된다. 왜냐하면 화는 나쁜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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