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잡초 대화

Chris Jeon 2024. 6. 14. 23:59

 

 

‘사부작사부작’ 생활 철학의 실천 방법 중 좋은 것이 잡초 뽑기다.

아침에 스무개, 저녁 나절 또 같은 수 정도 뽑으면 그다지 넓지 않은 뜰은 내가 원하는 녀석들만 맘 놓고 자라는 천국이 된다.

 

“잡초를 왜 잡초라 부르시나요? “

“글쎄, 내가 너희들 이름을 잘 몰라서 그런다.”

“혹시 쓸데 없는 녀석들이란 뜻은 아니겠지요?”

 

그러고 보니 ‘잡’자 들어간 단어는 대부분 그 의미가 좋지 않다.

‘잡종’, ‘잡상인’, ‘시정잡배’ …

 

좀 망설이다가 궁한 답을 한다.

“사실 이름도 모르지만 내가 같이 살기를 원하는 풀들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잡초라 불리는 우리들이 얼마나 환경에 잘 적응해서 생명력이 이렇게 질긴지 아시나요?”

“당신들이 좋아하는 잔디는 하루만 물 안 줘도 비실대지만, 우리는 그냥 내버려둬도 알아서 잘 크지요. 그리고 잔디가 우리보다 더 잘 생겼다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또 우리가 당신에게 무슨 해코지 한 것이라도 있나요? 당신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잡초라 불리는 우리 몸에서 당신들을 괴롭히는 병 치료제도 나오고 건강 북돋우는 좋은 영양제도 만들어 진답니다.”

 

가만히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잡초란 생각은 내 기준이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우리편, 내가 필요 없으면 잡것들. 그 잡것들의 생각이나 실체는 나랑 상관이 없는 것이니 아예 생각해볼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래 니 말도 맞네. 미안하다. 그렇지만 어쩌겠니. 이 땅 주인은 나고 나는 잡초보다는 잔디나 화초가 더 좋단다. 그러니 안됐지만 너희들은 뽑혀줘야겠다.”

 

인간이란 똑똑한 생명체가 만든 호미란 도구를 들고 되바라지게 말하던 놈의 뿌리 부근을 톡 치고 살짝 잡아 올리니 쏙 뽑혀진다. 그냥 그 자리에 두면 다시 살아날 것 같아서 말려 죽일 요량으로 빈 통에 넣는다.

 

“니 말은 맞지만 그래도 나는 내 방식대로 할 거야. 왜냐하면 내가 이 땅의 주인이고 힘도 있거든. 내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은 참 어려워.”

 

그릇에 담겨서 말라가는 잡초가 마지막  말을 던진다.

“그래 당신 맘 대로 하세요. 올여름 폭염이라니 가을쯤 이 땅에 잔디가 번성할지 우리 잡초가 살아 남을지 두고 봅시다.  잡초는 먹을 수 있어도 잔디는 못 먹는다는 것도 기억해 두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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