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날 낳으시고, 선생님 날 만드시고’
서울 어느 성형외과 건물벽에 붙어있던 광고라고 한다.
지금 봐도 잘 만든 걸작 광고문구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 정체성(Identity)은 무엇일까?
나의 모양은 매 순간 변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1초전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나의 모습은 다르다. 그 사이 세포 분열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눈썹 한 개가 빠질 수도 있다. 선생님이 나를 새로 만드신 경우는 짧은 시간에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나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정신이란 존재 자체도 아리송한 것이지만, 하루 종일 오만가지 생각을 하듯이 어떤 정신이 나를 특정하는 지 알 수 없다. ‘내 마음 나도 몰라’ 라는 유행가 가사도 있다.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내가 구별되는가? 김 아무개의 아버지, 누구의 남편, 어느 회사의 부장 등. 이러한 관계 역시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하거나 소멸 생성된다.
이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김철수란 이름은 내 본질과는 아무 관계없는 명칭일 뿐이다. ‘질경이’란 식물을 보지 못한 사람이 명칭만으로는 그 식물의 모습이나 맛 따위를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의 정체성을 똑 부러지게 나타내는 그 무엇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 나라는 인간은 존재하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나, 그가 누구 인지도 모르고 얽혀 있는 관계, 참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든다.
2024년 어느날
거울속에 왠 낮 익은 얼굴의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