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시니어 글 3: 막(幕)

Chris Jeon 2024. 1. 12. 23:10

 

 

#1 요즘 젊은이들

 

아주 오래된 나라의 비석을 발굴해서 보니, 쓰여진 문구가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늙은이들은 항상 버릇이 반듯한가?

 

한인 문화 축제를 다녀왔다.

K팝 노래를 틀면 관중들이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율동을 따라하는 프로그램을 구경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젊은이들이고, 이어지는 각기 다른 노래에 맞춰 격정적으로 몸을 흔든다.

음악에 몸을 맡기고 웃고, 환호하며 춤 추는 그들이

버르장머리 없고 저속한 무리인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어서 진행된 프로그램은 전통 줄타기와 농악 공연인데

일어서서 박수치고 흥에 겨워 어깨 들썩이는 무리의 대부분 역시 젊은이들이다.

장르를 넘나들며 즐기고 몰입할 수 있는 그들을 통해 역동하는 미래가 엿보인다.

 

#2 오늘 찍은 내 사진

 

어느 교수님이 쓴 수필 내용중,

내가 가장 슬플 때는 예쁜 여제자의 어머니를 만날 때.

어머니 얼굴에서 그 여제자의 미래의 모습이 보인다고.

 

오늘의 내 사진이 나의 best 사진이다.
내일의 사진은 오늘 보다 하루 늙은 나의 얼굴.
물론 늙는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하루라도 젊은 내 얼굴이 좋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늙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곱게 늙고 잘 늙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곱게, 잘 늙을 수 있을까?
오늘 삶의 결과가 내일 아침 나의 얼굴이니
오늘 하루를 잘 살면 결국 곱게, 잘 늙은 내일의 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3 막이 내려진다

 

연극을 보면 중간중간 막이 내려진다. 영화는 중간에 끊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연극이 영화보다 실제 삶과 더 가깝게 느껴진다.

막이 내려지지 않는 연극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배우도 지치고 관객도 지루해지고, 극적인 변화를 줄 여지도 적다.

마치 한사람이 뛰다가 지쳐 쓰러지는 전 과정을 찍은 흑백 기록영화처럼.

 

막은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나은 다음 장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여유,

즉 앞장을 더 낫게 이어 가기 위한 쉼이고 변곡점이다.

 

우리의 삶에도 막이 필요하다.

매일 찾아오는 밤은 오늘과 내일을 가르는 막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자연이란 큰 무대를 구성하는 막이고.

그럼 내 죽음 역시 나와 후손을 잇는 막인가?

 

막을 부정하고 저항하는 삶은 부자연스럽다.

퇴장해야 할 시기를 거부하고 버둥대다 끌려 내려지는 한 시대의 주인공들.

정점에서 내려올 시기를 놓쳐 불 꺼진 무대에서 괴로워하는 배우 같은 존재들이다.

 

막은 꼭 내려온다는 자각, 막이 내리기 전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열정,

내려오는 막 뒤로 사라지는 순응이 나의 인생 2막을 더 풍요롭고 자연스럽게 만든다.

주인공에서 관객으로 입장이 바뀌더라도 연극의 멋은 그대로다.

연극의 3요소가 배우, 무대, 관객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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