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밖을 보면 외롭고 밖에서 섬을 보면 그립다.
이민와서 십여년 섬에서 살아봤고 지금은 대도시에서 5년째 살고 있다.
내가 살았던 섬은 남한 면적의 1/3쯤 되는 큰 섬이지만, 가끔씩 답답함을 느꼈다.
섬 한 켠 해변에 앉아 건너편 흐릿하게 보이는 육지를 보면, 섬이라는 단어가 주는 외로움이 덮쳐온다.
고구마처럼 길쭉한 모습에, 그래서 남북으로 놓인 고속도로가 500km 가까이 거리가 나오는 섬이지만, 차 타고 휭 떠날 때는, 130여킬로 가면 해안선에 닿는 남쪽보다는 300km 넘게 달려야 바다에 막히는 북쪽으로만 갔다. 그래야 가슴이 좀 터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딜가나 한국 식당이 보이고 한국말이 영어보다 더 자주 들리는 동네에 살고 있어 무지 편하다. “오늘 소주 한잔 할래?” 번개 미팅 카톡 보낼 수 있는 친구도 몇몇 있어 밤이 낮 보다 긴 날에도 덜 심심하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섬이 자리잡고 있다. 어쩌다가 뱃고동 소릴 들릴 때는 내가 그 섬으로 간다.
헤링 떼가 몰려오면 수컷이 뿜는 정액으로 바닷물 색깔이 변하고, 잔칫상 받은 물개, 바다사자, 범고래, 하늘에는 갈매기, 땅에는 해변으로 튀어 오른 헤링 주어 먹으러 온 너구리... 육해공 합쳐진 장관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리고 있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대 서사시다.
외로워서 좋은 섬. 그래서 그리운 섬. 귀한 것을 품고 있을 때는 외로웠는데 그것을 놓고 오니 다시 그립다
인생사도 마찬가지일까?
PS) 어느 블친님의 글에 댓글 달다가 두고 온 보물이 아쉬워져 글의 싹이 돋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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