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먹방 유감

Chris Jeon 2021. 8. 28. 11:26

  옛 어르신 말씀 중 내 논에 물 들어가는 것 볼 때와 자식 입에 밥 들어 가는 것 볼 때가 가장 기쁜 때라는 말이 있다. 가뭄에 시달리고 굶는 이들이 흔했을 시절을 회상시키는 조금은 슬픈, 그래서 공감이 되는 말이다.

 

  한국에서 남이 먹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먹방프로그램이 인기다. 혼자서 많이 먹고 빨리 먹는 단계에서 진화해서 가족 단위로 단체 흡입하기도 하고 심지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까지 한몫 거든다.

 

  먹방이 유행하는 원인은 다양하게 분석되지만 대체적으로 대리만족심리로 모아지는 것 같다. ‘혼밥의 예에서 볼 수 있는 사회적 소외에 따른 외로움, 다이어트 스트레스, 게걸스럽게 먹고 싶은 탐식 본능 등 개인적 혹은 사회적 욕구 충족의 간접 방편이라는 것이다.

 

  자식이 밥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을 보며 행복해하는 것과 남이 내 대신 먹어주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심리는 다르다. 전자가 이타적이라면 후자는 이기적인 심리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타인에게 양보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내게는 바람직하지 않는 것을 남이 대신하는 것을 보며 만족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넓은 의미의 가학증적 심리다.

 

  먹방 출연자들이 대부분 많이 먹을 수 있고 또한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출연 경쟁이 심해짐에 따라 좋아요버턴을 누르는 수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어, 더 많이 더 빨리 먹어야 하고, 이는 상당수가 자신의 건강을 희생해야 하는 결과에 이른다. 먹방 출연자의 인기 수명이 평균 1~3년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오래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닌 것 같다.

 

  세계인구 8면 중 1명 꼴로 날마다 배고픔을 안고 잠든다고 한다.(출처: FAO, 2013) 그중 상당수가 어린이다. 지금 내가 안 먹는다고 그 음식이 굶주리는 사람에게 당장 갈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겪는 기아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분배의 불평등이라는 점을 알면 과식하는 것을 상품화하고 또 그것을 보면 즐거워하는 자신의 행태를 한번쯤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이글을 마무리 하면서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복싱와 같은 격투기 스포츠를 즐기는 것과 먹방의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내가 직접 남을 때리지 못하는 욕구 불만을 권투가 해소해 주는 순기능은 있다. 하지만 격투기 스포츠와 폭력의 확실한 구분은 룰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 먹방에는 룰이 없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 중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다행하게도 세상에는 외로움, 억압된 환경에서 오는 심리적 불만을 해소할 건강한 방법들이 무수히 많다. 오늘 당장 먹방 프로그램을 보는 대신 밤하늘을 한번 쳐다보자. 날씨만 좋다면 하늘에 자유롭게 떠서 빛나고 있는 수많은 별들이 힘들어 하는 나를 위로해줄 것이다.

 

2021714

잠들기 전 야식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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