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예절

윤활유 한 방울 3 : 발자국 남기는 것

Chris Jeon 2022. 2. 28. 10:36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에는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후세들에게 이정표가 될 것이니

 

 

한자는 잘 모르지만 내가 좋아하는 한문시 번역한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삼가하는 서산대사의 마음이 와 닿아서 전문을 옮겨 실어본다.

 

일개 분대의 군인들이 지나가면 없던 길도 새로 생겨난다. 군홧발의 위력이 실감나는 말이다.

 

팬데믹 상황으로 산행과 트레킹을 즐기는 인구수가 확 늘었다. 오랜만에 가본 트레일 Path가 2년전에는 한사람 지나갈 만한 넓이에서 조금 과장해서 지금은 신작로처럼 넓어진 것을 보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져서 길이 닳고 넓어진 것은 어쩔 수 없다. 문제는 없던 길이 수없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사람 발길이 닿는 자연의 원래 모습이 훼손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특히 취약한 풀이나 이끼 지역이 한번 훼손되면 원상 회복은 거의 불가능 하다.

 

그래서 기존 만들어진 path를 벗어나지 말라고 부탁하는 안내문이 곳곳에 있다. 하지만 자기만의 자연을 즐기겠다는 욕심 때문에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만 골라서 들어가는 트레커가 있다. 이기심이 가득한 분들이시다. 서산대사님의 시는 읽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조금 돌아가는 path에는 거의 100% 지름길이 새로나 있다. 걷자고 오신분들이 왜 shortcut를 만드는지 이해가 안 된다. 지치거나 걷는 것이 귀찮으면 되돌아가면 될 것을…

 

내 발걸음부터 조심하자. 내가 발로 딛고 서지 않는 자연이 진짜 자연이다. 내가 찾아가지 않더라도 자연은 스스로 알아서 온다. 신선한 공기를 보내주고, 새소리를 들려주고, 계곡에 물을 내주고 가끔씩 곰도 얼굴 내밀고 인사한다.

 

실수로 자기 몸에 손 닳으면 기절할 듯 놀라고 불쾌해하는 사람들이 왜 가만있는 자연은 그렇게 헤집고 다니는지 모를 일이다. 그 잘하는 ”Excuse me”란 말은 잊어버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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