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단풍이 아름다운 사회 1

Chris Jeon 2021. 8. 25. 02:39

 흔히 미국과 캐나다 사회를 비교할 때 melting pot과 모자이크 사회로 비유한다. 용광로는 모든 것을 다 녹여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모자이크는 여러가지 다른 모양의 조각과 색깔이 모여서 조화로운 형태의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 사회가 용광로와 모자이크의 속성을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는지는 단언하기는 어려워도 국민의 상당수가 이와 같은 비유에 공감하는 것으로 보아 최소한 그들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관의 방향만은 이러한 속성을 향하고 있음을 느낀다.

 

 용광로 속 광석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 오로지 최종 제품이 추구하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미국인 다운 미국인이 되지 않으면 그 사회 안에서 존재하기 힘들어진다. 용광로 안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의 개별적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그들의 가치는 최종 제품의 가치로 수렴된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모두가 성조기 아래 한데 모여 미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하고 더 미국인 다워 지고자 외치는 모습에서 용광로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모자이크화에서는 각각의 조각과 색깔이 갖는 고유함이 유지된다. 녹아서 합쳐지는 것이 아닌, 모여서 조화를 이뤄 각각의 존재가 갖고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을 만든다. 개인의 특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다른 이와의 조화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캐나다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성공 관건이 된다. 다름을 배척하는 것이 아닌, 달라서 이룰 수 있는 조화를 추구하는 가치관이 수용적인 사회를 가능토록 한 문화적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쪽 무릎 꿇기가 도쿄 올림픽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한쪽 무릎 꿇기는 지금까지 약자로 고통받고 상처받아온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다. 어디 흑인 뿐이겠는가?  동양인이라는 것 때문에 아직도 바이러스 매개자로 오도되고, 증오 범죄 대상이 되어 폭행당하는 기사를 수시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무릎 꿇기의 의미에 내심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자이크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다름으로써 더 아름답고 그 다름이 모인 조화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 이러한 가치관이 굳건해져야 인종차별의 악습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형형색색의 단풍이 물드는 캐나다의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기다려 진다.

 

2020년 7월 어느 날

동양인 대상 증오 범죄가 끊이지 않음을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