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우리 휴혼 했어요"

Chris Jeon 2021. 8. 24. 22:02

 

  ‘소설가 이외수씨와 졸혼을 했다가 이씨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졸혼 종료를 선언한 아내가 “여보, 같이 살자”며 애틋함을 보였다.’ 한국 모일간지에 실린 기사다. 병상에 누운 이외수씨를 만감이 교차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사진도 함께 실렸다.  '졸혼'이란 용어는 신조어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으로서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자유롭게 사는 것을 말한다. 이혼이란 법적인 갈라섬을 택하는 대신 차선책으로 마련한 타협안인 것 같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는 말이 있듯이 내내 평탄하고 평안한 결혼 생활은 기대하기 어렵다. 두 사람 사이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해결이 안된다고 확신하면 평생을 불편한 관계로 지내는 것 보다 헤어짐을 더 쉽게 선택하는 경향이 늘고, 대신 이혼이 가져올 불확실성을 감안하여 졸혼이라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낸 신세대적 발상에 기발함을 느낀다.

 

  사실 인간의 감정은 기복이 심하고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한순간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분노가 치솟다 가도 한숨자고 나면 내가 심했나?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하는 법이다. 그래서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했던가? 졸혼의 경우도, 물론 오랜 기간 동안 숙고해서 내린 결정이었겠지만 그 오랜 기간 후의 결심 역시 더 오랜 기간 후에는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졸업한 후 재 입학은 불가능하다. 대신 학교 다니는 것이 일정 기간 불가능해 졌을 경우 휴학이라는 제도가 있다. 휴학은 복학을 가정한 제도다. 훗날 두 사람의 사정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고 내 마음 역시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졸혼’이라는 말 대신 ‘휴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다시 돌아 올 수 있다는 전제로 떠나면 떠나 있는 내내 돌아옴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인구 모두를 1초 동안 한사람 씩 만난다고 가정하면 약 240년이 걸린다고 한다. 기왕지사 맺어진 인연인데 매몰차게 ‘졸혼’을 선언하지 말고 대신 ‘휴혼’을 선택해서 인연의 한 가닥 끄트머리라도 이어 놓은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1년 7월 14일

                                                                 졸혼을 번복한 소설가 이외수씨 부부의 기사를 읽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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