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부질없다

Chris Jeon 2023. 12. 4. 10:49

 

 

 

성당에서 가장 바쁜 조직이 연령회다. 신자들의 단체로서 주로 선종하신 분들의 장례, 그리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단체.

 

어느 가정이나 가족 중 누가 돌아가시면 당황하고 경황이 없다. 그런데 누가 알아서 척척 진행해 주니 고맙다. 비 신자였지만 본인 가족 장례식 때 연령회의 봉사 활동을 보고 세례 받기로 결심하신 분들도 많다.

 

나도 연령회 회원이다. 열심히 활동하는 ACTIVE MEMBER는 아니고 주로 운구 할 사람이 없을 때 아주 가끔씩 운구 봉사한다. 사실 장례 치러줄 가족이 없는 가정이거나, 운구 할 사람 고용할 돈이 없는 가정 등 사정이 어려운 가족들의 장례 준비를 보면 딱해서 내 주특기 좀 살린 것이다. 잘 걷고 팔 힘도 같은 나이 또래 비해서 약간 세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관 들고 걸어가면 별다른 생각이 든다.

“나와 무슨 인연이 있길래 이역 만리 땅에 와서 이분의 관을 들고 걸을까?”

“내 죽고 나서도 누군가가 내 관을 들고 이렇게 걷겠지?”

그분의 살아 생전 팔팔했던 영정 사진과 크지 않은 관 모습이 오버랩 된다.

관속에 누워서 덜렁거리며 가는 내 모습이 연상된다.

 

내가 들고가서 내린 관이 땅속으로 사라지거나, 화덕 속으로 들어가면 내 임무는 끝이다.

마련된 식사자리에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유족이 그런대로 살만한 것 같으면 나도 그 자리에 가서 식사하고 오고, 어렵다 싶으면 그냥 집으로 온다. 그리고 오늘 보람된 일과 끝. 포도주 한잔하고 내 일상으로 돌아온다.

 

죽고나서 통상 1주일 지나면 가족이나 친구나 관련된 사람들 모두 제 자리를 찾아 가서 그들의 루틴을 반복한다. 돌아가신 분은 생일이나 제삿날 잠시 기억될 뿐이다. 사실 관이 사라지는 순간 그분의 존재는 영원히 이 세상과 이별이다.

 

요즘 좀 유별나게 돌아가신 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그분을 잘 알거나 모르거나 쑥덕쑥덕.

관 들고 가서 내려 놓고 느끼는 감정은 통상 반나절은 간다. 어제까지는 나도 그분 욕 좀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뭘 그럴 필요 있나 싶다. 영원히 이 세상 떠나신 분 욕해본들 무슨 소용 있나?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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