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싸움 2 : 싸우기 위한 싸움

Chris Jeon 2022. 11. 1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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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 중에는 싸우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싸우는 것도 있다.

돈 받고 싸우는 격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격투기는 나름대로 룰이 있고 심판이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하면 싸움이 아니고 경기다.

 

상대에 대한 증오심. 이런 경우에는 이해와 타협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상대를 해쳐야 한다는 투지만 불타오를 뿐이다.

 

증오심이 형성된 이유는 물론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할 경우, 증오심이 형성된 이유를 풀면 증오심이 사라지고 이해와 타협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일단 증오심이 내 마음에 자리잡으면 이성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해와 타협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이다.

 

벼락 맞은 듯 어떤 큰 각성에 의해 증오심이란 것을 자각하고 던져 버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참 드문 경우고, 보통은 증오의 칼날에 피차 치명상을 입은 후 자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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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우는 적이 아니다. 좌만 있거나 우만 존재하면 극좌나 극우가 되기 싶고 이들의 비극적인 종말은 역사를 통해서 배운다. 진보 보수도 마찬가지. 둘 중 하나가 죽으면 나머지도 죽는다.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 상대를 겨누는 칼춤에 가슴이 서늘하다. 악에 찬 함성, 살기가 느껴지는 비아냥, 모든 것을 걸겠다는 ‘가미카제’식 만용. 옛날 먹고 살기 힘들 때 견디다 못한 여인이 입을 앙다물고 “너 죽고 나 죽자’ 하며 달려들던 슬픈 광경이 떠오른다.

 

서로 다르지만 있어야 하는 다양성이 세상사 균형을 잡는데, 나와 다름을 모두 적으로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지구가 신음한다.

 

싸우기 전에 ‘왜 싸워야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하면 안 될까? 내가 꼭 이래야 하는 이유 같은 것, 내가 그 이유에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그 확신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고 싸우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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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되겠지. 마음속에는 이미 상대에 대한 미움이 가득 차 있어서 합리적인 생각이 파고들 여지가 없을 것이다.

 

동기 부여 전문가가 말하길, 모든 부정적 감정의 둥치는 원망심이라고 했다. 나는 이 원망심을 증오심으로 대입한다. 미워하면 원망하게 되니까.

 

사실 그 전문가도 원망심을 싹 없애 버리는 비법을 말하지는 못했다. 그냥 칼로 그 둥치를 싹둑 잘라버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칼이 과연 무엇일까?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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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심을 싹둑 자를 수 있는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는 없을 것 같다.

지금껏 그런 칼을 못 봤으니…

 

그분의 가르침으로,

수양 끝에 얻은 깨달음으로,

나의 양심으로…

어떤 방법을 쓰든

내가 쓱쓱 갈아 만든 나의 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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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안해야할 일을 하고야 말았다.

한국 신문 본 것.

신부님이 비행기 추락하라고 기도하셨단다.

80억 인구 중  별종이 있기도 하겠지만...

칼 갈기 전에 귀 부터 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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