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그냥 느끼는 것

Chris Jeon 2022. 10. 14. 14:58

 

 

 

오래전 어마무시 큰 원숭이(?)가 주인공인 영화 장면 중, 자신의 보금자리인 거대한 절벽 꼭대기에 앉아서 붉게 물드는 석양을 한참동안 바라보는 것이 있었다. 그때 그 원숭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관객들은 짐작한다. 아름답다. 그런데 원숭이가 ‘아름답다’란 단어를 알리는 없으니, 그냥 속으로 느꼈을 것이다.

 

 

”………………….” 그저 좋은 느낌.

 

 

많은 추상적인 표현의 실체를 똑 부러지게 규정하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선, 악, 행복…’ 같은 것. 물론 철학자들이 시도해 봤고 실제 이거다 하고 내 놓은 것도 많지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개념이니 내가 아니다 하면 그만이다.

 

 

‘아름답다’. 역시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 단어를 접한 사람들의 머릿속 생각에 따라 달라지고,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 이것이 추상적 개념이 갖는 어려움이자 묘미다.

 

 

무지개는 그냥 무지개로 두는 것이 더 낫다. ‘빛의 파장이 어떻고 물방울의 굴절율이 이러이러해서 생긴 현상’이라고 규정하면 그냥 자연 법칙일 뿐 우리 마음속의 무지개는 사라진다. 과학적 필요성은 분명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물리적 법칙에 근거해서 무지개를 본다면 너무 삭막하고 허하다.

 

 

모 일간지에서 바위틈새로 보이는 가을 경치를 실어 놓고 ‘화엄세계’ 라고 제목을 달아 둔 것을 보았다. 제목만 보면 ‘부처님이 사시는 곳’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부처님이 계시는 참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화엄세계’라는 단어를 빌어온 것으로 이해하지만, 문득 무한대의 의미를 인간의 좁은 인식 틀 안에 가두는 우를 내가 범하고 있는 것 같아서 좀 씁쓸했다.

 

 

신을 믿는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천국, 천당, 극락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인식 수준에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떠 올리고 그대로 그런 곳이라고 믿어버린다.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영원한 시간 동안 늙지도 죽지도 않고 과일 따먹고 반쯤 누워서 그레고리오 성가만 듣는 천국을 상상하면 너무 지겹고 끔찍하다고.

 

 

협소한 내 인식의 틀 안에 모든 것을 우겨 넣거나 재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곤란하다. 내가 가진 ‘틀’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 밖에 무한대의 세상이 있음을 알기만 해도 저절로 겸손해 지고 폭 넓은 사고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창 밖에 가을비 내린다. 반쯤 색깔 변한 낙엽이 바닥에 깔려 있겠다. 비 피할 수 있는 따뜻한 방에서 모닝 커피 마시며 글 쓴다. 쓰기 마치면 골프 약속 포기하고 우산 쓰고 동네 공원 한바퀴 돌고 와야지. 이 또한 비가 준 고마움이구나. ‘편안함, 행복, 아름다움, 감사…’ 내 머릿속 생각이고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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