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잃어버린 이름

Chris Jeon 2022. 5. 16. 12:16

 

 

캐나다에 이민 와서 local people에게 아내와 나를 소개할 때 이름을 알려주면 우리 둘 사이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느낌을 받고 조금 의아해했던 경험이 있다. 나로서는 당연히 부부로 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중에는 은근히 partner, 즉 정식 부부가 아닌 동거하는 사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고 보니 나와 아내의 성이 달랐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여자들이 결혼하면 대부분 남편의 성을 따른다.

 

이민오신 여성분들 이름이 복잡하다. 한국에서는 이** 살다가 이곳 관습을 따른다고 남편 성을 따라 김**으로 바꾸고, 영어 닉네임 하나 정하면 벌써 이름이 3가지가 된다. 영어 닉네임이 Helen이라면 Helen Lee도 가능하고 Helen Kim도 가능하니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같은 얼굴을 가진 대여섯분이 앞에서 왔다 같다 하는 것 같아 어지럽다.

 

거기에다가 아이들 이름을 빌려서 **엄마로 불리다가 손주 손녀를 보고 나면 본인 이름은 아예 거두고 본격적으로 손주 손녀 이름을 앞세워 아무개 할머니로 불린다.

 

이름은 나의 Identity를 나타내는 중요한 것이다. 한국에서 멀쩡히 내 성을 사용하다가 남편성으로 바꾸는 것은 이곳 문화를 따르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쳐도, 평균 수명 100세 시대의 절반도 안 지난 시점에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자녀, 손주 손녀의 이름을 빌려 산다는 것은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새삼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인지… 조금 갸우뚱해진다.

 

신호등에 왜 남자 이미지만 있느냐고 따지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여권 신장의 출발을 내 이름 지키기로부터 시작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부모님이 지어 주신 내 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온 한국 여성분들이 갑자기 남편성으로 갈아타는 것도 모자라서 아이들 이름 뒤에 숨고 손자 손녀 이름을 빌어 쓰는 퇴보 행각을 보여 서야 되겠는가? 여성분들이여, 당당이 자신의 이름 앞에 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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