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내 눈에는 티끌조차 없소

Chris Jeon 2021. 9. 11. 13:23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 의미는 익히 아는 바이니, 말꼬리 잡기 놀이를 해보자. 진정 내 눈에 들보가 있다면 못 느낄까?  들보가 아니라 티끌만 있더라도 남의 눈 속 들보 타령 하기전에 내 눈부터 비빌 것이다. 아침에 세수하고 나서 눈썹 하나가 눈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느끼면 그냥 두기 힘들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것은 특정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거칠게 말해서 인간이면 다 그렇다. 심리학 용어를 한가지 빌려보자. 방어기제란 것이 있다. 인간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조물주가 주신 선물이다. 그 중에서 널리 알려진 합리화란 기제는 불쾌한 상황을 그럴듯한 이유로 정당화하여 변명하는 것이다.  여우가 포도를 따 먹으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자 저것은 신포도야, 나는 저런 포도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이솝 우화가 있다. 부언하자면 내로남불의 바탕은 자기 합리화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을 탓하는 자는 사실 자신에게는 티끌조차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시간을 두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는 자신의 잘못도 인식하면서 상대의 더 큰 잘못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감정이 앞서는 순간에는 그저 단순하게, “You are wrong, I am right.”가 되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입증할 수 있는 논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고 방어기제가 그 선봉이 될 경우가 많다.

 

 조금 생각이 깊은 사람은 약간의 논리가 묻어난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은 인정, 하지만 너는 뭘 잘했냐?”는 식의 물귀신 작전이다. 세상을 살면서 잘못 안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상대방을 잘못을 따지기 시작하면 끝없이 상대를 비난하는 것으로 싸움은 이어진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커녕 서로 마음의 상처만 커진다.

 

 여기서 이러한 해결이 안될 것 같은 상황을 종식시키는 노력에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로 내 눈 속의 티끌을 지적하든 들보를 지적하든 있다면 어서 빼내야 할 것임에는 틀림없으니, 일단 "감사합니다" 해 놓고 보자. 그러고나서 진정 내 눈 속에 티끌이 없으면 찾아보니 없네요하면 그만이다. 상대가 잘못 봤을 수도 있으니 크게 분노할 일은 아니다. 내 눈에 티끌이 없다는 것을 내가 확인하고 상대에게 확인시켜준 좋은 결과에 만족한다.

 

 찾아보니 내 눈 속에 티끌이 있다면 먼저 빼내고 볼 일이다. 그냥 두면 결막염으로 진행되어 고생하는 수가 있다. 내게 덕 되는 일이니 자존심 상할 필요없이 , 있네요. 즉시 빼지요하면 된다. 고맙다는 인사는 덤이다.

 

 상대가 내 눈의 티끌을 빼 주었으니, 이제 내가 상대의 눈을 살펴볼 수 있겠다. 없는 티끌을 찾을 필요는 없겠고, 혹시 티끌이나 들보를 발견할 수 있으면 정중하게 이야기하면 된다. “선생님 덕분에 눈 속의 티끌을 주의 깊게 보게 되니, 선생님 눈에도 뭔가 보이네요" 정도면 족하다. 빼고 안 빼고는 상대 마음이다.

 

 반론이 예상된다. 차분히 앉아 글로 쓸 때는 가능한 논리일지는 몰라도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지적과 나의 본능적인 대응이 부딪칠 경우는 다르다는 것이다. 맞다. 몸의 움직임은 내 생각의 지시에 의한 신경과 근육이 조합된 움직임으로 이루어지고, 생각도 근육과 같이 훈련하기에 따라 모양과 강도가 달라진다. 반사작용과 같은 동작은 생각을 생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이는 특별한 경우이니 예외로 하자.

 

 의인이 물에 빠진 사람을 위험을 무릅쓰고 구하고 나서, “순간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이 평소에 위험에 빠진 사람은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기 때문이다. 골프 스윙이 이루어 지는 시간은 1초 이내다. 이 순간 오만가지 생각을 할 수도 없지만, 한다면 스윙이 망가진다. 평소 연습한대로 근육이 기억했다가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생각을 부단히 갈고 닦아서 내가 의식하지 않더라도 내 몸이 훈련된 생각에 따라 반사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자. 내 눈 속에 티를 지적해 주면,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내 생각을 훈련시키자. 누가 나의 잘못을 지적할 때마다 이를 악물고 고맙습니다를 외쳐보자.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

 

20219

세상 도처에서 삿대질하는 모습이 어지럽다

'시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념 혼동 사회  (0) 2021.09.22
이기심을 먹고 사는 바이러스  (0) 2021.09.12
가짜뉴스  (0) 2021.09.10
매년 피어나는 쓰레기 꽃  (0) 2021.09.06
낙타 등에 지푸라기를 얹다  (0) 2021.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