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고해성사 이야기

Chris Jeon 2022. 12. 14. 06:18

 

 

12월에는 판공성사(判功聖事)가 있다. 매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전의 대림 시기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면서 용서받는 카톨릭 고해성사 의식이다.

 

이민와서 한인 성당이 없어서 local church에서 세례 받았다. 매년 최소한 한번은 고해성사하는데, 영어가 어눌하니 어려운 점이 많다. 그래서 미리 준비했다. 영어로 내 죄를 좍~ 영작한 후 프린트해서 가져가 읽는 것.

고해실이 좀 좁고 어둡다. 프라이버시를 위한 것인가? 그러니 신부님 소리도 잘 안 들리고 내가 가져간 프린트된 죄들이 잘 안보인다. 어버버 하는 중에 신부님이 뭐라하시는데 잘 안 들려 뭐라구요?(Pardon?) 하고 되묻는다.

 

참~나. 내가 지은 죄도 영작해서 읽어야 하고, local people은 한번 고해실에 들어가면 무슨 속 깊은 이야기하는지 일 이십분은 기본인데, 나는 A4 프린트물 한 장 읽고 나오면 5분이면 족하다.

나는 죄가 쬐끔인가? 아니겠지. 좀 슬프고 화났다.

 

하느님은 모든 걸 다 아신다. 그런데 뭘 다시 고백해야 하나? 나름 답을 낸다.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백함으로써 진실로 반성하는 것.

 

여러명의 신부님들이 와서 고해를 들어 주시는데, 신자들은 자신이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부끄러우니까. 나도 마찬가지. 죄를 신부님께 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 하는 것인데 부끄러움 느끼는 걸 보면 아직 감추고 싶은 모양이다.

 

몇 년을 하다 보니 발견한 것 하나. 매년 내가 지은 죄가 같다. 특히 나는 버릇이 돼서 지은죄를 타이핑한 후 프린트해서 가져가는데, 매년 새로 칠 것도 없이 작년 것 출력해서 가져가도 될 정도다.

 

한가지 더, 아내 것을 흘깃 훔쳐보니까 내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꾀를 낸다. 시간 절약을 위해서 둘이서 같이 고해실에 들아가서 한 사람이 읽고 다른 사람은 “이하동문’ 하는 것. 농담이다.

 

솔직히 한심하다. 매년 같은 죄 짓고, 고백하고, 용서 받았다고 거룩한 마음으로 나와서 바로 같은 죄 짓고… 어느 신부님이 물으셨다. 교회에서 은총이 가장 가득한 곳이 어디냐고? 모두들 이런 저런 답을 내는데, 신부님 왈. “교회에서 가장 은총이 가득한 곳은 교회 주차장.” 이유는, “성전에서 은총을 가득 받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주차장에 받은 은총을 다 버리고 가니까.”

 

올해는 좀 달리 하려고 한다. 좍 읽는 것이 아니고 의논하려고. 올해 지은 죄가 작년과 같고 내년에도 같을 것 같은데 어찌해야 할까요? 참, 내가 그동안 영어가 늘어서 외국인 신부님과 의논 할 정도가 된 것은 아니고, 이젠 대도시에 사니 한인 성당이 있어서 언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신부님이 뭐라고 하실 지 궁금하다. 예상되는 가르침;

-다 그러니 좌절 말고 계속 노력해라.

-구제 불능이니 물렀거라.

-그건 나중에 이야기 하고 네가 지은죄부터 낱낱이 고백해 봐라.

 

에고~ 판공성사 가기가 싫어 지네.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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