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약속 2

Chris Jeon 2025. 3. 8. 10:50

 

 

 

혼자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나, 내가 인지하든 못하든 그 무엇과 관계가 맺어져 내 삶이, 이 세상이 돌아간다. 그렇다면 그 관계를 유지하는 끈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약속’인 것 같다. 범위를 좁혀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저 사람들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무언의 약속을 믿고 형형색색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모인 장소에 아무 두려움 없이 들어간다. 동물이라면 상상이 안된다.

이 돈을 가져가면 상응하는 가치의 것으로 교환해 준다는 약속을 믿고 죽자사자 돈을 모은다. 따지자면 증권은 더 실체가 안보이고 가상 화폐는 문자 그대로 가상의 돈이지만, 우리는 그 약속 가치를 철석 같이 믿고 산다.

 

약속이 인간 관계 유지의 중요한 끈이라는 예는 차고 넘치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못 지킬 형편이어서, 의지가 약해서, 약속의 중요성을 몰라서, 잊어 버려서 등등 이유는 여러가지다. 그 중에서도 고약한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약속을 헌신짝처럼 던져 버리는 이기심이다.

 

요즘 이기적인 인간, 조직, 나라가 눈에 많이 띈다. 당사자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명분을 생산해 내지만, 분명한 것은 약속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손가락을 걸고, 선서문을 읽으면서, 규약을 만들어서, 성경책에 손을 얻고 한 약속들이 휴지조각처럼 날라가는 모습들.

 

맺어진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즉시 나타나는 것이 불신이다. 내가 너를 못 믿고, 조직과 조직이 서로 의심하고, 국가와 국가가 마주보고 으르렁거린다. 신뢰가 무너지고 결국 믿을 것은 내 힘 밖에 없다.

 

전적으로 힘에 의존해서 사는 세상은 동물의 왕국이다. 신체적으로 강하고 변화에 기민하게 적응하는 종만 살아 남는 것. 아인슈타인 박사가 3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인간들이 돌 무기를 들고 싸울 것이라고 했다. 인간들도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회귀 본능이 있다고 하던데 결국 우리는 본능에 충실한 구석기시대 이전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동물들과 경쟁하며 살기를 원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