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 10

미치다

서양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 중 하나가 표정 연출이 참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참 심각한 이야기 하다가 사진 찍는다 싶으면 찰나에 입을 옆으로 쫙 찢고 활짝 웃는 모습이 나온다. 반면에 한국 사람들은 잘 안된다. 그래서 사진 찍을 때 쓰는 보조적 방법 중 하나가 ‘치즈’라고 외치는 것. “치즈”하면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가니까. 그런데 더 걸작을 봤다. ‘미친년’이다. “미친년” 하면 안 웃고는 못 배긴다. 문득 미쳤다고 하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이기만 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미치고 싶다고도 하니까. 그럼 좋은 미침을 가려내기 위해 부정적 미침부터 잘라내 보자. 일단 자발적 미침과 비자발적 미침부터 구분한다. 비자발적 미침은 문자 그대로 질병이나 사고와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내가 ..

단상/일상 2023.01.29

A/S 단상

A/S 약자를 보면 먼저 After Service가 떠오른다. 물건을 팔고 난 후의 서비스(after sales service) 혹은 고객 불만족을 처리해 주는 것(customer service).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와서 가장 불만족스러웠던 것이 바로 A/S다. 이민 초기 겪은 사례 한가지. 비즈니스 할 때 꼭 필요한 물건이 제 시간에 배달 안돼서 회사로 전화 했다. 발신음 들린 후 기계로 연결되고 녹음된 목소리가 나오면서 안내가 시작된다. 가능한 인터넷으로 연락하라고 하면서 웹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는데 복잡한 알파벳 첫 글자 밖에 기억 안난다… 그 다음 원하는 서비스별 눌러야 할 번호가 여러 개 안내되고… 그중 하나를 누르니 통화 중 신호 뚜 뚜 뚜… 5분 동안 계속 뚜 뚜 뚜 하다가 연결..

단상/일상 2023.01.26

약속글 5: 없어지지 않는 것

♥ 어느 블벗님과 같이 생각 나누기로 한 주제의 글 올립니다. ♥ ‘한 남자가 무거운 물건을 지고 사다리 타고 지붕에 오른다. 무릎이 시큰거릴 정도로 힘을 쓴다.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 장독위에 떨어진다. 장독이 깨진다. 장독은 외부로부터 힘을 받아 깨진 것이다. 그 힘은 남자가 사다리 오를 때 쓴 힘이다.’ 중학교 때 물리 선생님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설명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을 보니 참 적절한 예를 드신 것 같다. 내가 힘을 다하여 베풀었지만 그 상대가 내게 소홀히 하면 섭섭하다. 헌신하며 사신 분이 허망하게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렇게 착하게만 살 필요 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힘을 써 베풀었다면 내 힘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있어야 한..

단상/일상 2023.01.20

어느날 일기

내일 토요일 산행 클럽 모임 있는 날. 작년 11월부터 거의 참석 못했는데 좀 미안해서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기상 예보 영하 13도~ 영하 4도로 춥다. 출발지까지 집에서 70Km 인데, 이제 눈길 운전은 좀 부담스럽다. 마누라 의중을 떠 보니 나랑 비슷함을 확인. 대안을 찾자. 집에서 6km 거리에 있는 트레일, 아기자기한 경관에 눈이 쌓여 있어도 걷기에 부담 없는 코스. 지인에게 번개 미팅 제안. 그들 부부도 같은 산행 클럽 멤버인데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의기 투합. 산행은 땡땡이치고, 내일 아침에 내가 제안한 그 트레일 출발지에서 만나서 같이 걷기로 약속. 요즘 가게 접고 조금 의기소침해 있는 대학 후배에게도 전화해서 join 약속 받음. 팀으로 딱 걷기 좋은 3쌍 6명 확..

단상/일상 2023.01.19

약속글 4: 기도에 대한 생각

“기도하면 맘이 편해. 그래서 자주 한다.” “전공 선택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열심히 기도하면서 여쭈었더니 어느날 내 눈 앞에 칠판이 그려지면서 ‘식품영양학’ 이란 글자가 씌여지더라.” “무료급식 봉사하는데 급식소 월세 낼 돈이 없어서 열심히 기도했더니 마지막 날 어떤 분이 오셔서 꼭 월세 금액만큼의 돈을 기부하고 가시더라.” “국화의원 출마해서 691표 차로 낙선해서 낙담 했는데, 어느날 기도 중 불현듯 떠오른 생각, ‘0691’, 아~ 영(0)혼과 육(6)신을 구(9)원(1)하는 일을 하라는 계시임을 깨달았다.” 기도 관련 들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다. 듣는 사람마다 모두 느끼는 생각들이 다를 것이다. “기도해주세요” 라는 청을 받았을 때 그저 “예” 하고 나서 막상 기도하는 순간 분심이 든..

요설 2023.01.17

장례식에서는 조금만 울고 싶다

서양에서는 좀 덜한데 한국 장례식에서는 대부분 많이 운다. 나는 조금만 울고 싶다. 이젠 완전한 이별이라고 생각하니 슬프고 그동안 잘못한 것이 더 많으면 회한이 밀려와서 울음이 증폭된다. “나는 이제 어찌살꼬?” 내 자신의 처지가 암담한 경우에도 울음 소리가 커질 것 같다. 좋은 곳에 가셨고 앞으로 앞날 수 있다고 믿어도 다시 만날 때까지의 헤어짐이 서운해서 눈물이 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조용히 울 것 같다. 다시 만날 것을 믿고 싶어도 속으로 긴가민가하면 그 울음소리가 더 커질 수도 있겠다. 살아 있는 동안 너무 지긋지긋 했는데 이제 떠났으니 속이 시원한 경우에는 눈물이 안나거나 나더라도 조금 나겠지. 분명한 것은,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살아 있을 동안에 언젠가 떠난다는 것을 알고 할 바를 다하..

단상/일상 2023.01.14

약속글 3: 별나다

유별난 사람이란 소리를 가끔씩 듣기도 하고, 사실 내가 좀 별나 보이기도 한다. ‘별나다’의 뜻은, 통상 성격이 보통 사람보다 다르다 혹은 평균에서 멀어져 있다. 그럼 내 성격이 왜 유별난 것처럼 보여지거나 생각되는 것인지 살펴보자. 속에 생각을 오래 담아두지 못한다. 바로 내뱉거나 행동으로 옮긴다. 눈치없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내 생각은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한가지 사안에 생각이 꽂히면 그대로 두고 다른 것으로 잘 넘어가지 못한다. ☞두루뭉술이 잘 안되는 점은 있지만 집중이란 면에서는 장점. 원칙에 매인다. 융통성이 부족하다. ☞기계적인 느낌이 들고 때론 인간미가 부족하다. 그래도 큰 욕은 안 먹지. 자로 잰 듯 반듯해야 기분이 좋다...

단상/일상 2023.01.10

자식과 로봇

# “평화를 주소서” 열심히 기도한다. “그럼 너는 뭐할래?” “주시면 평화롭게 시키는 대로 잘 살랍니다.” “너 거지냐? 주는 대로 받아만 먹게? 나 애써서 인간 만들었지 로봇 만든 거 아니거든. 로봇은 사실 네가 나 보다 더 잘 만들 수 있겠다. 많이 만들어 쟁여 놔라. 너희들 다 죽고 나면 로봇만 사는 평화로운 세상이 저절로 될 것이야.” “…” # “Have mercy on us.” 열심히 노래한다. “이번에 용서하면 어떻게 할래?” “다시는 죄 안 짓고 잘 살랍니다.” “같은 말 너희 조상님들이 수 없이 했지. 이젠 지겹다. 내 약속 하나 하마. 지금부터 죄 안 지으면 이전 것 다 용서해 줄께. 할 수 있나” “…” “에그 차라리 로봇을 만들걸…” # 당찬 인간 등장. 뭐 하나 잘하고 나서 아버..

요설 2023.01.07

되바라진 자식의 항변

# 나름 바르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 중. 어느 날 고속도로 차 몰고 가다가 술 취해서 역주행 하던 차에 받혀서 저승으로 감. 그곳에서 그분을 만남. “잘 왔다. 내가 너를 요긴하게 쓸 일이 있어 데려왔지.” “좀 우아한 방법으로 데려오면 안되나요?” #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 참 황당하고 슬프다. 무진 고생 끝에 굶어 죽지는 않았고, 아픈 마음 달랠 길 없어 종교에 귀의. 기도 열심히 하다가 저승으로 감. 그곳에서 그분을 만남. “잘 왔다. 너로 하여금 나를 알게 하려고 그런 일이 일어난 것 이제 알겠지?” “그런 모진 일 안 겪고도 이곳에 오신분들 많은 줄 압니다.” # 아버지 잃고 홀어머니와 살다 입 하나 덜자고 보육원에 보내진 외아들. 다행히 의지가 굳고 좋은 기회도 만나고 독하게 노력해..

요설 2023.01.06

새해 희망: 시소(Seesaw)

배출된 전세계 음식물 쓰레기 양은 약 10억톤. 생산된 식량의 17% 6초마다 한 명씩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 식량 관련된 암울한 통계. 다른 부분은? 선과 악의 무게를 달 수 있다면 지금 지구 위 선악의 무게 총량은 어느 것이 더 무거울까? 모르겠다. 그러나 지구는 아직도 돌고 있다. 아직 선, 악의 시소(seesaw)는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았나 보다. 내 손가락 하나 선 쪽을 누르면 악을 이길 수 있을까? 추운 날씨에 같이 떨며 자기 돈 들여 밥 나눠주는 분. 목숨 걸고 오지에서 어린이 치료해 주는 의사. 평생 고생해서 번 돈 자식 안 주고 사회에 환원하는 분. 조그만 논이라도 열심히 갈며 식량 증산 고민하는 농부. 기후변화 막아 보겠다고 물 불 안 가리고 뛰어다니는 과학자. 죽어서도 장기 ..

단상/천국 2023.01.04